구제역 악몽에 FTA 압박… 이젠 규제까지?

환경부, 무허가 축사 폐쇄 조치 ‘가축분뇨관리 대책’ 발표

“구제역의 악몽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FTA와 힘겹게 맞서야 하는 농가들을 우리 정부가 규제로 다시 짓밟는 꼴입니다.”

포천시 군내면에서 돼지 1천200여마리를 키우고 있는 L씨(57)는 최근 환경부가 발표한 가축분뇨관리 대책을 접한 뒤 매일 한숨만 쉬고 있다.

무허가 축사 폐쇄, 가축분뇨 관리 강화 등 강력한 규제조치 때문이다.

L씨는 “축산업이 대형화돼 규제가 필요하다지만 이는 영세농가의 생존권까지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재입식 비용과 날마다 오르는 사료값에 허리가 휠 지경인데 정부 기준에 맞추느니 차라리 돼지를 다 팔아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14일 환경부에 따르면 환경부는 최근 ‘가축분뇨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무허가·미신고 축산농가에 유예기간을 거쳐 폐쇄조치하겠다는 가축분뇨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무허가·미신고 축사에 대해 법 개정 후 2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사용 중지 처분과 폐쇄 처분, 이에 갈음하는 3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이번 대책에는 가축분뇨 배출·수집·운반·처리를 공장폐수 수준으로 엄격히 관리하고 질소·인의 기준을 현행보다 최고 3.4배 강화하며 환경부 장관이 지자체장에게 가축사육 제한조례를 정하게 하거나 상수원 지역 외에도 과밀사육지역을 추가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하지만 도내 축산농가들 사이에서는 ‘현실을 무시한 환경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행정’이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무허가 축사가 전체의 40% 정도에 달하는 상황에서 양성화 노력이나 사전 지원 없이 무조건 폐쇄하는 것은 축산 말살 정책이나 다름없으며 최근 가축분뇨는 액·퇴비로 자원화시키고 있는 추세임에도 이를 공장폐수와 같은 잣대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한돈협회 경기도협의회 박호근 회장은 “유예기간이 있다고 해도 자기 돈을 들여 시설재투자를 할 정도로 형편이 넉넉한 농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정부의 압박이 계속된다면 생업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예리기자 yell@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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