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절전량 중 387만㎾는 1천750개의 산업체의 절전 노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피크 시간대 전력수요의 54% 가량을 차지하는 산업체는 조업시간을 조정하고 냉방기 가동을 중지해 387만㎾의 전력을 줄였다. 총 절전량의 71%에 해당된다. 백화점·대형마트·호텔·다중이용시설 등 일반 건물에서도 총 절전량의 25%인 138만㎾를 줄였다.
아직 미약한 전력부족 위기의식
대다수 이마트는 모든 점포의 조명을 절반 가량 끄고 어두컴컴한 상태에서 영업했고, 롯데마트도 97개 모든 점포가 정전을 가상한 비상훈련을 실시했다. 전체의 96%를 차지할 만큼 이들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문제점도 적잖게 드러났다. 일부 지역은 비상사이렌 소리에도 불구하고 빌딩·상점 냉방은 여전했고, 도심 곳곳의 분수대가 물줄기를 뿜어 올렸다, 분수대는 전기로 가동되는 시설물이다.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는데 이날 훈련에선 전혀 관리되지 않았다. 도심지의 많은 상점들이 에어컨을 켜고 문을 연 채 영업했다. 민간 업무용 빌딩과 병원, 커피전문점 등 다중 이용시설의 참여도는 더욱 저조했다.
특히 일반 주택의 경우 전력수요를 5천㎾정도만 줄여 절전 참여도가 낮았다. 일반 주택은 피크 시간대 전력수요 점유율이 11%에 달하지만 이번 훈련에서의 절전량은 전체의 0.06%에 불과했다. 가정 주부나 일반 시민층의 전력부족에 대한 위기의식이 아직 약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대부분 집을 비우는 시간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참여가 너무 낮았다.
전력대란을 무서워하지 않는 계층이 의외로 많다. 정부와 국민은 전력대란에 대비해야 된다. 우선 넉넉한 발전 용량을 확보하는 일이다. 하지만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대로 서울과 양주의 복합화력발전소 등 올해 준공예정이던 450만㎾의 발전설비가 지연되거나 취소됐다.
원전 예정부지의 반발 기류도 난제다. 당장 대형 발전소가 어렵다면 노후 발전소 폐쇄 시점을 늦추거나 단기 준공이 가능한 신규 발전소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 다음으론 전력 소비를 줄이는 일이다. 비상 훈련으로 절전 잠재력은 확인됐지만 아직도 가정·업소의 과소비 패턴이 전적으로 개선될 조짐은 없다. 원가에 밑도는 전기요금이 주범이다. 지나치게 싼 전기 요금 체계를 서둘러 손봐야 한다는 얘기다.
싼 전기 요금, 과소비 부추긴다
일본의 전기 요금은 우리의 2.8배, 미국은 1.3배다. 특히 가용 한도 내에서 단기적 수급 상태를 최적화해야 된다. 잇단 원전 고장 등으로 전력공급 능력은 더 떨어졌고, 정비 일정도 들쑥날쑥해 위기감을 더 키웠다. 올들어 예비전력이 400만㎾ 이하로 떨어진 게 벌써 두 번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발전소 한 두 곳이 고장 나면 치명적인 위기가 닥친다.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안정적 예비전력 규모인 500만㎾를 손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6월21일 정전대비 비상 훈련이 입증했다. 정전대비 훈련이 더 필요한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기는 값싼 에너지가 아니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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