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실시한 정신질환 역학조사 결과, 우리나라 성인의 14.4%(519만명)가 평생 한번 이상 정신질환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세 이상 인구에서 10명 중 1.5명 정도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 자살사망률도 인구 10만 명당 31.2명에 달하고, 자살 시도를 한 사람중 정신질환 경험자가 75.3%에 달한다. 여기에 학교폭력, 게임 중독, 입시 스트레스 등을 겪고 있는 18세 이하 청소년까지 포함할 경우 우리 국민의 정신질환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하지만 ‘정신과 환자’라는 주위 편견과 불이익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 정신질환자 가운데 15.3%만이 병원이나 전문가를 찾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벼운 우울증을 치료받은 전력만 있어도 취업·보험 가입 등 각종 사회활동에서 받는 불이익이 수십가지나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전 국민이 생애 주기별로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를 알아보는 검진을 받도록 했다. 또 가벼운 우울증 등이 진료기록에 남아 취업이나 민간보험 가입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정신질환자 범위를 축소키로 했다.
보건복지부가 며칠전 발표한 ‘정신건강증진 종합대책’에 따르면, 초등학교 입학전 2번, 초등학교 때 2번, 중·고등학교 때 각각 1번, 20대에 3번, 30대 이후로 10년마다 2번씩 정신건강검진을 받는다. 영·유아와 청소년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우울증, 인터넷 중독 등을 집중적으로 확인하고, 청·장년은 스트레스와 우울증, 불안장애, 자살, 알코올 사용장애 등을 중점 검진한다. 60대 이후 노년층에 대해선 스트레스와 우울증, 자살 징후 등을 주로 확인한다.
정신건강검진은 건강보험공단이 대상자 나이에 맞는 문진표를 우편으로 보내면 검진자가 스스로 작성해 회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건보공단은 문진표를 평가해 결과를 본인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검진 결과는 정확한 확진이 아니라 심층평가 필요 유무와 상담·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관 정보만 담는다. 검진자는 안내받은 기관을 찾아 심층평가나 전문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OECD 국가중 1위이고, 우울증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 차원의 정신건강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이런 점에서 전국민 정신건강검진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일로, 정신질환의 조기 발견과 치료 및 예방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정 질병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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