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선의 세계속으로⑥] 찬란했던 페르시아제국의 심장

이란 ‘페르세폴리스’

이란의 수도 테헤란 남쪽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유적지인 페르세폴리스가 있다. 이란 고원에서 발흥한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는 다리우스 1세 때에 최대의 영토를 이룩했다. 동쪽으로는 인더스 강 유역, 서쪽으로는 아나톨리아, 북쪽으로는 중앙아시아의 아랄 해, 카스피 해, 그리고 남쪽으로는 에티오피아에 이르렀다. 제국의 위업을 전 세계에 과시하려 했던 다리우스 1세는 새로운 도시 건설을 명령했고 손자 대에 이르러 완성된 도시가 바로 페르세폴리스다. 페르세폴리스는 ‘페르시아의 도시’라는 뜻으로, 그리스인이 붙인 이름이다.

가장 호화로웠던 ‘백주의 방’

페르시아의 위대한 왕이었던 다리우스 1세는 즉위 직후인 기원전 522년 공사를 시작해 손자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까지 3대에 걸쳐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했다. 약 60년이 걸린 대공사였다.

페르세폴리스의 면적은 나비 300m, 길이 450m에 달했으며 삼중 문으로 이어진 큰 층계를 올라간 지점에 웅장한 크세르크세스문이 서 있다. 왕궁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입구로 모든 방문자들은 이곳에서 왕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지나가야 했다. 후문에는 한 쌍의 날개가 달린 황소의 조각이 지키고 있고 외벽은 두터운 진흙 벽돌로 만들어졌다.

크세르크세스문 안쪽에 세워진 궁전 중에서 중요한 것은 아파다나라 불리는 알현의 객실이다. 아파다나의 돌계단에 남아 있는 부조는 페르시아의 병사가 메디아 또는 엘람의 병사와 행진하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거대한 영토를 가진  페르시아를 통치하기 위해 다른 민족과의 협력을 중요시한 페르시아 제국의 정책을 반영한 것이다.

가장 호화롭던 곳은 백주의 방이었다. 백주의 방은 문자 그대로 100여 개의 기둥을 가진 방으로 ‘옥좌전’으로도 불린다. 다리우스 1세 때 공사를 시작해 크세르크세스 1세가 완성했으며 한 변이 68.5m인 정사각형 모양으로 거대한 기단 위에 지었다. 초석 위에는 1줄에 10개씩 모두 100개의 기둥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지만, 지금은 주춧돌과 쓰러진 기둥 잔해만 남아 있다.

궁궐 벽면에는 전세계에서 조공을 바치러 오는 여러 민족들의 모습이 섬세하게 조각돼 있다. 72개 기둥 가운데에서 12개는 아직도 서 있고 오르는 계단에는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져 있다. 20여 나라 사절단의 모습과 귀족, 군인, 말, 전차들로 이들은 왕에 대한 영원한 충성의 증표로 은, 금제품, 무기, 보석, 각 주의 특산품을 선물했다. 조각에 나타난 그들의 옷, 머리장식과 머리 스타일, 수염 등을 보면 인종과 성격을 알 수 있다.

아파다나와 옥좌전 남쪽에는 왕과 왕후가 사는 궁전과 보물 창고 등 많은 건물들이 모여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황량한 일부 유적만이 남아있다.

한때 아프리카 대륙까지 정복한 ‘대제국’

기원전 550년경에 메디아 왕의 신하로서 파르사를 다스리던 페르시아의 카루스 2세는 외할아버지였던 메디아의 왕 아스티아게스를 물리치고 메디아와 페르시아 두 나라를 합병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를 세웠다.

그 뒤 페르시아는 강대국인 리디아 왕국과 아나톨리아지방의 그리스 식민지를 정복하고 신바빌로니아를 공격해, 순식간에 대제국이 됐다.

페르시아 제국은 제2대 캄비세스 2세(재위 기원전 530~기원전 522), 제3대 다리우스 1세(재위 기원전 522~기원전 486)에게 계승돼 영토가 더욱 확장됐으며, 전성기에는 고대 오리엔트 세계를 넘어 인도, 중앙아시아, 에게 해, 아프리카 대륙에까지 이르렀다.

오리엔트 세계 전체를 손에 넣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다리우스 1세 때 그리스로 군대를 출동시켜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무적을 자랑하던 페르시아군은 그리스 원정에 실패함으로써 다리우스 1세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크레스크세스 1세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다시 그리스로 출격해 아테네를 공격하고,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파괴했다.

그러나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크게 패했다. 그 뒤 페르시아 제국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하다가 기원전 330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재위 기원전 336~기원전 323)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페르시아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마케도니아 군에게 약탈당한 페르세폴리스는 불길에 휩싸였다.

기원전 330년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하고 궁전에서 잔치를 벌였는데, 한창 흥이 났을 때 한 무희가 “우리를 괴롭힌 페르시아 왕이 살던 이 궁전을 불태워 버리면 얼마나 통쾌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를 허락했다. 다음날 술에서 깬 알렉산더 대왕은 불타버린 페르세폴리스를 보면서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고 한다.

드넓은 평야 적시던 ‘슈슈타르 관개시설’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페르시아 제국은 자신들이 통치하던 다른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했다. 페르세폴리스는 이러한 제국의 모습이 잘 나타난 곳으로, 페르시아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도시였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슈슈타르 관개시설(Shushtar Historical Hydraulic System)은 페르시아 제국의 영공을 잘 보여준다. 인류의 창조성이 돋보이는 건축물로 페르시아뿐만 아니라 나바테아와 로마 건축기술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장려한 건축물이다.

페르시아 사산 제국의 샤푸르 1세는 260년 에데사 전투에서 승리해 약 7만 명에 달하는 로마 군인들을 포로로 잡았다. 에데사 전투 항복한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말을 탄 샤푸르 1세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조아리는 모습이 낙쉐로스탐의 암벽화에 자세히 새겨져 있다.

당시 큰 토목 공사를 하려면 뚜렷한 건설장비가 없어 이를 보충할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많은 로마 제국의 포로들을 이용해 페르시아 제국은 대규모 건축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슈슈타르 관개시설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산 제국은 수량이 풍부한 카룬 강의 물을 이용해 대규모 농경지를 확보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로마의 기술자 및 전쟁포로들을 이용해 먼저 거대한 댐을 만들었다. 댐 위쪽의 강바닥이 침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바닥에다 거대하고 평평한 돌덩이를 쇠밧줄로 엮어 깔아놓았다. 이곳은 후일 세계적인 불가사의의 하나라고 감탄했을 만큼 뛰어난 시설물이었으나 지금은 일부만 남아있고 대부분 땅속에 묻혔다.

19세기 들어서 댐 체계가 무너진 후 슈슈타르 관개시설은 와해되고 도시도 쇠퇴했다.

 

슈슈타르 관개시설 중 가르가르 수로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기다란 터널을 통해 물을 슈슈타르로 보낸다. 물은 장대한 절벽을 이루며, 하류 유역으로 쏟아져 내리고, 도시 남쪽에 위치한 평야로 흘러 들어간다.

글·사진 _ 여행 칼럼니스트 허용선

중앙대와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7년 전국대학미전 문교부장관상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보도 관련 공로 체육부장관상, 2004년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그 동안 9회에 걸친 개인전을 열었으며, 지금까지 세계 90개국, 1천여 곳 이상을 취재했다.

사진작가가 겸 여행 칼럼니스트,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출간한 책만도  20권에 이른다.

 


[Interview ] 아흐마드 마수미파르 주한 이란 대사

안전·평화로운 나라 여행객 불안은 기우

이란은 찬란한 고대문명의 전통을 잘 간직한 중동의 이슬람 국가다. 옛날에는 페르시아라고 불렸던 초강대국이었으며 세계에서 역사가 아주 오래된 나라 중 하나이다. 자랑스런 역사와 문화유산이 많은 이란의 한국 대사를 만나 본다.

올해 한국과 이란은 수교 50주년을 맞았다. 특별한 행사가 있나

양국 간의 문화 기관의 협조를 통해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 등을 개최하려고 한다. 주간 영화제, 주간 문화 체험전, 미니아투르 전시회, 이란의 문화 및 문명 프로그램 등이 준비되고 있다.

이란에선 못 먹는 술과 돼지고기를 한국에선 쉽게 먹을 수 있고, 여성들도 자유분방하게 거리를 다닌다. 이런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고생한 적은 없었는가

이란의 국민들은 본국(이란)의 풍습과 문화를 존중하고 또한 다른 문화와 풍습 또한 존중한다. 이란에는 다양한 종교와 각 지방의 문화와 풍습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평화적으로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이란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있다면

이란은 5천년이 넘는 역사와 문명을 가졌으며, 많은 유물과 유적이 있다. 또한 세계의  10대 관광지 안에 속해 있다. 이란은 31개의 주로 이뤄져 있다. 또한 31개의 주는 각각의 특색이 있는 문화와 풍습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관광지로 팔스 지방을 꼽을 수 있는데 2천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페르세폴리스가 있다. 그 밖에 관광지로는 이란의 옛 수도인 이스파한, 코라 산, 케르만, 야즈드, 서(쪽)아잘바이잔, 동(쪽)아자르바이잔 지방들이며, 모두 유명한 유적지이며 관광지다.

일부 한국인은 이란 여행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대사관의 입장은 어떤가

지리적으로 아프카니스탄, 이라크와 같은 주변 국가들이 외세의 침략, 내전 등으로 인해 이란 또한 안전하지 못한 지역으로 오해 받고 있다. 그러나 주변 국가들의 비평화적 상황과 안전하지 못한 것은 이란과 무관한 일이다. 현재 많은 외국 관광객들과 많은 한국인들이 매년 이란을 방문하고 있고, 또한 많은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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