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허리를 감싼 밤꽃이 자취방의 남자냄새처럼 퀴퀴하게 풍겨오고, 언덕을 뒤덮은 망초꽃은 환영 속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아래로 흘러내린다. 나는 오묘하게 미소 짖는 메릴 스트립을 만난 듯 그윽이 취했다. 흰 나방이 날개 짓 할 때, 저녁 드시고 싶으면 언제라도 오라던. 산자락 뽕잎에 매달린 까만 오디가 옛 생각을 몰고 온다. 추억은 발효처럼 기억의 독안에서 소리 없이 익었다. 세월은 벌써 한해의 반환점을 돌아 속도를 낼 기세다. 팔봉산 감자 캐기 축제에 와서 씨알 굵은 감자를 거두며 배고팠던 시절의 어두운 부뚜막을 떠올린다. 다시 서해가 스카이라운지 창처럼 내다보이는 팔봉산에 올라 먼 이국의 오지로 떠나고픈 허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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