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엔 울창한 숲과 각기 다른 정자가 이어진 후원이 있다. 능선을 오르내리며 만난 옥류천 골짜기엔 궁궐에서 유일한 초가 정자 청의정이 서있고 자그마한 논엔 벼가 자라고 있었다. 임금이 직접 벼농사를 지으며 농심을 헤아린 곳이다. 한무리 도시 아이들이 해설사의 이야기에 토끼처럼 쫑긋 귀를 세웠다. 오월 말에 모내기와 시월 말에 벼 베기 행사가 있다고 한다. ‘정자나무 그늘 밑에 좌차를 정한 후에 점심그릇 열어놓고 보리단술 먼저 먹세. 반찬이야 있고 없고 주린 창자 메인 후에 청풍에 취포하니 잠시간 낙이로다’ 농가월령가의 한 대목을 생각하다가 두고 온 고향이 왈칵 떠올랐다. 논두렁의 황새가 정자위의 선비처럼 풍류를 은유하던, 푸른 논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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