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돋보기] 21세기 창조적 천재 백남준을 기억하며

21세기의 미켈란젤로, 과학과 예술을 놀이로 삼는 천재, 칭기즈 칸보다 넓은 영토를 차지한 위성 유목민. 이는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세계를 연 백남준을 일컫는 말들이다.

그가 태어난 지 80주년을 맞는 올해 크고 작은 추모 행사들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백남준을 처음 만난 것은 1986년, ‘바이바이 키플링’을 뉴욕, 동경, 서울에 위성으로 동시 중계하였던 뉴욕의 PBS 방송사에서였다. 당시 뉴욕 유학 중으로 머물던 차에 PBS의 출입을 허가받아, 주조정실에서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열정적으로 생중계를 지휘하던 백남준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미 1984년 1월 파리의 퐁피두센터 앞에서 진행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위성중계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던 터라 현장을 참관하는 감회가 남달랐다. 위성아트 3부작으로 명명된 프로젝트를 통해 백남준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조지 오웰, 당신의 예언은 틀렸다. 발달된 과학기술은 전 세계를 하나로 묶고 새로운 밝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인 ‘바이바이 키플링’을 통해 영국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된 소설 ‘정글북’의 작가 루디야드 키플링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키플링은 아프리카나 아시아 나라들을 미개하다고 치부하던 제국주의의 신봉자였고 시를 통해 ‘동양과 서양은 결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백남준은 뉴욕과 동경, 서울의 대표적인 팝 문화 공연을 교차 편성해 문화로서 지구인들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었고 ‘꺼져라. 키플링!(바이바이 키플링)’이라는 펀치를 날렸다.

백남준은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은 독재로 간주했고 대중이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에 관계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그런 만큼 그의 예술 세계는 인위적이고 심각한 사상이나 철학을 배제하고, 주관적인 서양 전통사상이나 기존 예술에 철저히 맞섰다. 또한, 그는 ‘작품은 그냥 작품으로써 끝날 뿐, 금전적인 가치가 붙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예술 철학을 갖고 있기도 하였다.

백남준은 미술, 음악, 철학, 과학을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비빔밥처럼 버무려 비디오 아트를 탄생시켰다. 백남준은 아마 하늘나라에서 자신이 예견한 21세기를 흡족하게 바라보며 소셜 미디어와 증강 현실, 아트를 하나로 엮고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새로운 장르를 개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1960년대 그는 한국에 비빔밥 문화가 있는 한 한국의 멀티미디어의 미래는 밝다고 예견했다.

오늘날 창조경제시대를 맞아 한국의 IT기술이 전 세계 선두에 서고 한류 콘텐츠가 세계인들과 통하는 것을 보면서 반세기 전 오늘을 예견한 그의 선견지명이 놀랍다. 백남준은 시공간을 초월한 비디오 예술을 통해 사유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진정한 21세기형 창조적 아티스트이다.

성열홍 경기콘텐츠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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