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이 너무 많다. 제조업 분야의 대기업, 중견 기업, 중소기업의 비율을 살펴보면 한국(2007년)이 0.1 대 0.2 대 99.8다. 이에 비해 일본(2006년)은 0.2 대 1.1 대 98.7로서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비율이 한국보다 네 배나 크다. 독일(2005년)은 1.3 대 8.2 대 90.5로서 중견기업 이상의 비율이 한국의 32배에 달한다.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중소기업이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틀린 소리다. 중소기업이 많아서 좋을 게 뭔가. 생산성은 떨어지고, 임금은 낮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중소기업에는 취업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기업이 더 많이 생기는 것이지 중소기업을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높이려면 대기업으로 크는 중소기업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현실은 그러지 않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119개사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중소·중견 기업에서 대기업으로 큰 기업은 28개사뿐이다. 그나마도 기존 대기업집단 소속기업과 외국인기업을 제외하면 그 수는 3개사로 줄어든다.
중소기업에 온갖 혜택 제공하는 정부
왜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 크지 않는 것일까? 안철수 원장은 재벌들 때문에 중소기업이 크지 못한다며, 재벌 기업을 삼성동물원, LG 동물원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건 지나친 침소봉대다. 그의 말대로 납품 계약을 독점방식으로 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아무리 삼성, LG라 해도 중소기업에 계약하자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비밀 유지가 필요한 핵심부품업체가 아닌 다음에야, 협력업체가 다른 기업에 납품하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되면 부품원가가 높아져 자기에게 오히려 손해로 돌아온다.
동물원이라는 비난이 무색하게도 재벌기업의 협력업체 중에서 다국적 기업으로 도약한 곳이 많다. 예를 들어 현대차 협력업체로 출발한 한주금속은 스스로 품질을 높이고, 해외 시장을 개척해서 지금은 르노, 닛산, GM, 도요타 등에도 납품한다. 삼성전자는 아예 상생협력센터를 통해 협력업체의 해외 진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재벌기업들과 무관하게 성공한 중소 중견 기업들도 있다. 네이버의 NHN, 인터파크, 카카오톡 같은 곳이 모두 대기업과 무관하게 컸다. 안철수 연구소 자신도 삼성SDS와 거래를 해서 안정적인 자금원을 확보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안철수가 원할 때 SDS와의 관계를 청산했다. 다른 기업이라고 그렇게 못 할 이유가 없다. 안철수 원장의 동물원 비유는 자신의 경험과도 맞지 않는다.
대기업 되고 싶은 환경 만들어야
나는 오히려 정부의 잘못된 중소기업 정책이 중소기업의 야성을 길들이고 우리 안에 가두어두는 동물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중소기업정책은 중소기업으로 머무르는 자에게 온갖 혜택을 주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규모를 키워 대기업이 되면 혜택은 사라지고 수많은 규제만 어깨 위에 올려진다. 더 큰 어려움은 여론이다. 중소기업들과의 사이에서 갈등만 생기면 모든 비난과 책임이 대기업으로 돌아온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중소기업이 규모를 키우겠나. 심지어는 기업을 분할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옮겨서라도 중소기업의 자격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YG-1의 송호근 사장의 증언이다. 작은 규모로 남아 정부로부터 쉽게 먹이를 받아먹는 것이 낫게 만드는 정부의 정책이야말로 중소기업 동물원이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업이 많을수록 일자리는 늘고 소득도 높아질 것이다. 그러자면 대기업이 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동물원에 가두어두고 편하게 먹이만 주려는 현재의 중소기업정책과 대기업 때리기 정책의 이중구조를 다시 돌아봐야 할 때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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