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는 국제대학교 교수 모국 이민자의 눈과 귀 되고 싶어”
지난 2002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전정숙씨(38·전티튀)는 직장인 남편과 초등학교 4학년, 네살 된 두 아들을 둔 10년 차 주부이다.
베트남에서 평범한 중학교 영어교사였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한국인 남편을 만나게 됐고, 그 길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됐다. 이전까지 전씨는 타국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처음 한국땅을 밟은 그녀는 꽉 막힌 의사소통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결혼 이민자를 위한 다문화센터와 같은 교육 공간이 전혀 없어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힐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야, 밥먹어!”라고 하자 자신도 시어머니에게 “야, 밥먹어!”라고 말했다가 호되게 야단맞았던 기억을 되새기는 전씨. 그때부터 사전을 끼고 다니며 이를 악물고 한국어를 공부했다.
또 한국사람과 최대한 부딪히기 위해 그가 사는 안성을 비롯해 곳곳에 들어선 다문화센터에서 컴퓨터를 배우며 한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기 위해 노력했다. 차츰 한국어가 익숙해진 그는 다문화센터 등을 찾아다니며 통역과 번역 일을 맡았다.
그러던 2006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전씨에게 안성경찰서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관이 전씨에게 외국인 통역을 부탁했던 것.
“모국인은 아니었지만 어려움에 처한 외국인의 딱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무언가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어요. 더욱 열심히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공부해 한국에 거주하는 어려운 외국인들의 대변인 역할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평범한 결혼이민자였던 그의 삶은 그날로 완전히 달라졌다. 그 일을 계기로 경기지역뿐만 아니라 서울에 있는 경찰서 통역도 담당하게 됐고, 더 나아가 미용사와 재봉틀 등 한국인도 따기 어려운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난 2008년 평택대학교에 편입, 2년간 통계학과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이어 악바리 근성을 발휘,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2년 동안 다문화를 전공했다.
이러한 노력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전씨는 지난 2월 평택 국제대학교 관광경영계열 외국인 교수에 채용됐다. 현재는 학생은 물론 교직원들에게까지 베트남어와 다문화에 대해 널리 전파하는 다문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여름방학이지만 더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전 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수연구실로 출근하고 있다.
“외국인에 대해 무조건 차별하지 말고 한국인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그는 “결혼 이민자들이 공부하거나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이들이 사회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 _ 권혁준 기자 khj@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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