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문화 권력 균형화 전략’이라는 생경한 제목의 문건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했다. 언론 보도의 주된 관심사는 그 문건이 어느 시점에 어느 곳,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고, 누구에게 보고되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등 현실 정치적 시시비비를 다투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그와는 조금 다른 곳에 머물렀다. 아마도 그것은 한동안 잊고 지내던 ‘문화 권력’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려 보게 됐기 때문인 듯하다. 어찌 보면 문화와 권력이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도 하고 조금은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겠건만, 그 모든 것이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습이 한편으로 의아하기도 하다. 또 우리에게 문화 권력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렇게 칭할 만한 어떤 실체가 우리에게 있기는 한 것인지 등에 대한 상념이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가 누군가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모두 내포한다 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는 어떤 행위의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면서 그에 따르는 권위와 신뢰를 묵시적으로 담보하고 있기도 하다. 반면 부정적 의미론 제도화된 지배구조를 스스로 엮어낼 수 있는 압도적 영향력으로 인식되면서 권위와 신뢰보단 종속과 억압의 수용을 전제하게 된다.
특히 우리에게 권력이란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부와 명예를 일거에 일궈낼 수 있는 성공신화의 척도로 선망과 쟁취의 대상이기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다른 나라에 그런 표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루가 멀다않고 언론을 장식하는 ‘권력형 비리’라는 말 속에 권력에 대한 우리의 복잡한 속내가 묻어있는 듯도 싶다.
문화 권력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권력이 그러하다면, ‘문화 권력’이란 물적 토대를 넘어 정서적 기반은 물론 신념과 가치를 아우르는 권위와 지배적 영향력을 일컫는다 할 것이다. 실로 그 파급력을 가늠키 어렵기에 두렵기도 하면서 탐하고 싶은 권력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게 그만한 문화 권력의 실체가 있기는 한 건가? 그리고 만일 그것이 있다 한다면 균형화니 뭐니 하는 이름으로 정책적 대상화의 입방아에 오르내림이 합당한 것인가? 등등 이런 저런 의문이 꼬리를 물다보면, 혹시 우리에게 문화 권력이란 ‘권력형 문화’의 또 다른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하긴 모든 분야에 걸쳐 관치행정의 크고 작은 족쇄가 실핏줄처럼 퍼져있는 우리네 현실에서 문화예술계라 해서 그 범주를 벗어나 있다 할 수 없다면, 이는 단순한 혐의로 치부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문화예술의 자율성 따져보는게 우선
문화 권력이란 그 의미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름지기 문화예술의 자율성이 견고한 토양위에서 배태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 권력을 어찌해보려 하기 위해선 먼저 문화예술의 자율성이 어떠한지를 따져보는 것이 일의 순서다. 애초에 있지도 않은 신기루를 쫓으며 부질없는 균형 찾기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이들도 그러 커니와, 문화도 권력도 아닌 환영에 의탁하여 문화와 권력에 기생하려는 이들 또한 딱하긴 마찬가지다. 우리 문화예술계 현장의 형편이 문화 권력 운운하며 이합 집산할 처지가 아님을 그들만 모르는 것 같다.
박명학 예술과마을 네트워크 상임이사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