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법관이여, 돈의 유혹을 떨쳐 버려라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정말 잘못된 관행이다. 죄지은 자는 누구나 법에 의해 똑같은 처벌을 받는 것이야말로 정의 사회의 핵심이다. 같은 죄를 짓고도, 돈 있고 빽 있는 자는 빠져나가고 돈 없는 자만 처벌을 받는다면 법이 설 자리는 없다.

새삼스럽게 이 말을 하는 것은 우리의 법조 관행이 정의롭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재벌닷컴의 자료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자산기준 10대 재벌 총수 가운데 7명이 총 22년6개월의 징역형 판결을 받았지만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반면 일반인들의 형사사건 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2011년의 경우 25%라고 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그 여파로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에서도 재벌 오너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법 개정이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유 ‘전’무죄 현상의 근원은 ‘전(돈)’이 아니라 법관의 타락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이 ‘독립’이라는 단어를 쓴 헌법기관은 법관 밖에 없다. 그만큼 법관은 독립적으로 심판할 의무와 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의 유혹에 넘어가는 법관은 법관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아니 헌법이 부여한 권한, 즉 ‘독립하여 심판’할 의무를 저버리는 반헌법적 행위를 하는 것이다.

유전무죄 근원은 법관 타락에 있어

김승연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까지 집행한 사건은 두 가지 면에서 뜻이 깊다. 첫째는 이 판결로 재벌 오너들에게는 집행유예를 주어오던 관행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아마도 앞으로 유사한 사건을 다루는 다른 법관들은 관행의 압력을 훨씬 덜 받게 될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둘째는 이 사건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유전무죄 관행의 가장 큰 원인이 법관 자신임이 분명히 드러낸 셈이다. 김승연 회장은 거물이다. 기라성 같은 로펌과 쟁쟁한 법관 출신 변호사들을 변호인으로 두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 한 사람이 마음을 굳게 먹으니 그런 거물까지도 법정구속까지 시킬 수 있었다. 법관에게는 그렇게 막강한 힘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돈 있는 자에게만 그 힘을 쓰지 않아 왔다면 헌법이 부여한 독립된 지위를 스스로 더럽혀온 셈이다.

재판의 당사자가 변호사를 고용해서 스스로 죄가 작음을 변론하는 것은 현대적 사법제도를 가진 나라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 모든 변론과 하소연을 듣고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릇된 것인지를 심판할 책임은 온전히 법관의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유전무죄 현상이 독버섯처럼 생겨났다. 법관이 선배 법관의 청탁을 못 이겨 유리한 판결을 내어주기 때문에 피고인들은 너도 나도 비싼 돈을 주고 그 선배 법관에게 자신의 변호를 맡기려고 하는 것이다. 전관예우를 말한다. 그런 압력과 유혹을 떨칠 책임은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라 법관에게 있다.

돈과 타협한 법관 처벌하는 개혁 필요

그렇기 때문에 유전무죄에 대한 실마리는 재벌개혁이 아니라 사법개혁에서 찾는 것이 옳다. 특별법까지 만들어 재벌 오너에게 특별한 처벌을 하겠다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이다. 유전무죄가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은 법관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돈과 타협한 법관은 색출하여 처벌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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