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좋다] 조선후기 실학의 태생지… 양평 두물머리 마재

황사영 “마을 앞강이 큰 공부입니다”

아름다운 풍광 ‘눈맛’ 오이소박이 국수 ‘입맛’

수년 전만 해도 중앙선 기차를 타고 한강 상류를 따랐다. 팔당역을 지나고 강변을 따라가면 양수리를 지나게 된다.

그리고 멀리 두물머리를 보게 된다. 지금은 철도 노선이 바뀌고 속도가 빨라져서 그 기분을 맛볼 수 없지만 중앙선 철도를 탈 때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최근 정부의 4대강사업과 관련하여 두물머리가 뉴스의 초점이 되어 유기농 농지를 굳이 개발해야 되는가가 문제되고 있지만 이곳의 자연경관은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곳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조선후기 실학파 정약용의 고향마을이기도 하여 그와 관련된 유적들이 남아 있고 실학박물관도 있으니 한번 쯤 찾아보며 당시를 회고 할만하다.

두물머리는 두 강이 합쳐지기 때문에 두 물이고, 그 지점이기 때문에 머리이다. 그래서 소설가들은 이렇게 묘사했다.

강들은 서로 스미듯이 합쳐져서 물이 날뛰지 않았다. 물은 넓고 깊었으나 사람의 마을을 어려워하듯이 조용히 흘렀고 들에 넘치지 않았다. 논경지들은 물가에 바싹 닿아 있었다.

수면과 농경지가 턱이 지지 않아서 아이들도 동이로 밭에 강물을 퍼 나를 수 있었다. 북한강 물은 차갑고 남한강 물은 따스해서 두물머리 마재에는 아침마다 물안개가 피었다. 해가 떠올라 안개가 걷히면 강은 돌연 빛났고 젖은 산봉우리에 윤기가 흘렀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흑산’에서 두물머리 마재를 이렇게 표현했다. 강원도 산협을 돌아 나온 북한강과 충주, 여주, 이천의 넓은 들을 지나온 남한강이 이 마재에서 만난다고 하면서 말이다.

소설 ‘흑산’에서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황사영은 그의 장인 정약현에게 말하기를

“마을 앞강이 큰 공부입니다”고 했다.

그러자 약현이 대답하기를

“자네가 이 마을 강을 알아 볼 줄 내 알았네. 마음이 깨어 있지 않으면 경서(經書)가 다 쓰레기일쎄”라고 했다. 이 아름답고 유유히 흐르는 강을 보고 세상을 깨우치라는 말일 것이다.

정약용의 형제인 정약현은 두 줄기 강물이 만나서 더 큰 물을 이루어 흘러가는 물가의 고향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 물의 만남과 흐름은 삶의 근본과 지속을 보여주는 산천의 경서였다. 인근의 운길산에 오르면 수종사라 작은 사찰이 있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수종사 경내 전망대에서 두물머리를 보면 정약용 형제들이 그 곳에 올라 강을 보고 세상을 깨우쳤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강과 들이 기름지니 근처의 음식점들의 음식도 맛이 풍부하다. 두물머리에 가면 잊지 말고 개성집에 들려서 오이소박이 국수 한 그릇은 꼭 드시길.

글·사진 _ 김란기(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 이정환(미아리 사진방 대표작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