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가 주최하고 수원시인협회가 주관한 제3회 ‘정조대왕 숭모 전국백일장’이 지난 8일 수원 화성행궁 화령전(華寧殿) 운한각(雲漢閣) 뜰에서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참가한 미래의 문인 600여명이 글짓기 솜씨를 발휘한 이날 백일장은 경기도·경기일보가 후원해 성황을 이뤘다.
조선조 23대 순조(純祖·1790~1834)가 선왕 정조대왕의 유덕을 숭모하기 위해 지은 화령전 운한각 주위 소나무 아래, 전각 계단, 처마그늘 여기저기서 詩를 짓는 모습들이 그림같았다. 초·중·고·대학생·일반인들, 60, 70대의 노인들도 적잖았다. 수원시인협회의 한 시인이 “화령전에 모신 정조대왕의 어진(御眞)이 밖으로 걸어 나오시는 것 같다”는 말이 사실처럼 느껴졌다.
‘백일장’은 과거(科擧)처럼 시험관이 참석한 가운데 시제(詩題)를 내걸어 즉석에서 시문(詩文)을 짓도록 하고 글을 잘 쓴 사람을 장원·차상·차하·참방으로 뽑아 시상한다. 조선조 3대 태종(太宗)이 1414년(태종 14) 7월 17일 성균관 명륜당에서 유생 500여명에게 시무책(時務策)을 물어 시험을 본 데서 비롯됐다. 유생들이 글재주를 겨루어 명예를 얻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어서 여러 지방 관아에서 널리 시행됐다. 순조 재위 시절 향시(鄕試)를 치른 곳이 화령전이어서 정조대왕 숭모백일장 장소는 역사적으로도 뿌리가 오래됐다.
정조대왕 숭모백일장이 한결 더욱 뜻 깊은 것은 염태영 수원시장이 첫해인 2010년부터 흔쾌히 행사비를 지원해주는 점이다. 수원시의 여러가지 문예정책이 돋보인다. 1794년 2월 28일 착공, 1796년 9월 10일 완공한 화성을 축성할 당시 화성유수격인 오늘날 수원시장이 정조대왕 숭모백일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장원상이 수원시장 명의로 수여되는 연유이기도 하다.
‘한양 밖 능행차 / 지지대 고갯마루 / 푸른 소매 흔들며 마중 나온 바람소리 / 노송길 더딘 발걸음에 삭지 못한 그리움 // 이파리 이파리마다 / 목이 메는 사부곡 / 온몸으로 스며들어 가지마다 휘어지는 / 바람도 받아 안아야 나이테를 키우지 // 짙은 어둠 헤쳐 / 길 없는 길을 내며 / 새로 지핀 불씨처럼 다시 돋는 새벽별 / 그 아래 갈증에 젖는 오래된 생각의 뿌리 // 만백성의 성군으로 / 시대의 새벽길 떠나신 / 이산 정조 꿈의 길, 사무치는 효심의 길 / 이 길목, 천만년 지켜 새날 열어 가리라’
대학·일반부에서 장원을 한 부천 거주 강세은 씨의 작품 ‘소나무’다. 1회는 부산의 한남희씨, 2회 땐 광주(光州)의 서수연씨가 장원을 했는데 모처럼 경기도 사람이 장원의 영예를 안았다. 그런데 3회 모두 여성이 장원을 차지했다. 여느 백일장 장원과는 달리 정조대왕 숭모백일장에서 장원을 하면,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자격이 부여된다. 문단에 공식적으로 데뷔한다.
올해 정조대왕 숭모백일장은 특히 대학·일반부의 많은 작품들이 정조대왕의 효사상과 맥락을 같이 하면서 시조의 형식에 담아낸 것이 특징이었다. 아름다운 수원 화성 화령전이 시적 분위기를 더 해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장원작 ‘소나무’는 정밀하게 4수로 짜여진 연시조다. 첫째 수엔 능행차를 하는 “노송길 더딘 발걸음에 삭지 못한 그리움”이라 하여 정조대왕의 심정이 녹아들면서 둘째 수, 소나무 이파리와 가지를 정조대왕의 감정이입으로 치환(置換)했다. 종결 수에 이르러선 정조대왕의 “꿈의 길”과 “사무치는 효심의 길”로 형상화하여 마무리했다.
중·고등 학생들의 작품도 좋았지만 잔디밭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작품을 쓰는 등 초등학생들의 수준도 예년 못지 않았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작품은 무엇보다 구김살 없는 동심의 표현이 가장 중요하다. 풀잎처럼 순수한 마음, 꽃 같은 예쁜 생각들이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었다.
정조대왕 숭모 백일장은 점점 널리 알려져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여, 정조대왕의 문예사상과 효정신을 기리고 수원 화성의 높은 문화가치를 구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게 분명하다. 참, 화령전 뜰에 옛날처럼 작약(芍藥)이 만발했으면 좋겠다. 수원 출신으로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정월(晶月) 나혜석(羅蕙錫·1896~1948)도 명화 ‘화령전 작약’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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