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김기덕 정신에 대하여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쥔 김기덕 감독은 기인으로 알려져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면 그는 웃통을 벗고 얼음 위에 가부좌를 튼채 참선을 하고 발을 뻗어 태권도 동작을 보여주는가 하면 팔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안고 허리엔 동아줄을 매서 맷돌을 끌고 산 정상을 오르는 괴이함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영화속에서만 아니라 평소 그의 삶에서 나온다. 자전적 다큐멘터리 ‘아리랑’을 보면 그는 외딴 산속에서 혼자 살고 있다. 혼자 밥 지어먹으면서 외로움에 대해 솔직하게 고민을 토로한다. 그는 열다섯살부터 공장을 다니면서 먹고 살아야했기 때문에 학력에 대한 열등의식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영화가 어쩌면 ‘나쁜 남자’인지도 모른다. 영화속 주인공은 부자집 여자를 납치해 몸을 팔게 시킨다. 학력과 계층의 열등의식은 이처럼 뒤틀린 심사로 복수하는 영화 속 인물로 기괴하게 탄생한 것이 아닐까.

김기덕은 한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다. 그에 의하면, 한국은 지옥과도 같은 곳이다. 가난한 집안사정은 그의 탓이 아니지만 운명이었고 그는 운명과 맞서 싸우는 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마음속에 한이 많이 맺혔고 주변의 자신과 같은 처지의 한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자신이거나 아니면 동병상련 버려진 인간들. 아마 김기덕은 대한민국 감독들 가운데 가장 비천한 인간들을 일관되게 그려온 유일한 감독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의 영화가 국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될 것이다.

한 맺힌 질곡의 삶을 극복해온 김기덕

그는 한국의 평단, 산업계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아직 스타가 되기도 전에 ‘실제상황’이란 영화 시사회때 김기덕은 언론에 대고 ‘마음으로 영화를 봐달라’고 호소했다. ‘참 건방진 말’이라고 속으로 느끼기도 했다. 그가 국제적 스타가 된 후 그는 어느 공개석상에서 언론에 대고 앞으로 국내에서 자기 영화를 개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것 역시 들으면서 ‘자기가 스타면 스타지 한국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나’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알만한 사람들은 김기덕이 왜 그런 말을 해대는지 알고 있었고 이제는 누구도 그 사실을 분명히 안다. 그동안 김기덕의 투박한 영화를 따뜻하게 격려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대다수 극장이 그의 영화를 많은 스크린에서 오래 상영해주지 않았다. 한국의 언론과 영화계는 김기덕을 버렸고 김기덕 입장에서 한국은 지옥이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빈집’으로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 그는 눈을 그려넣은 손바닥을 펼쳐보이면서 ‘마음의 눈으로 영화를 봐달라’고 말했다. 베니스에 모인 외국사람들은 너무 감동적이라며 박수를 쳐댔다. 이 말은 이미 한국에서 했던 말이지만 이렇게 반응이 달랐다. 올해 베니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정신, 요즘 한국에 필요한건 아닌지

그는 서구인들이 잘 알지도 못할 아리랑을 불러제꼈다. 감동의 박수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한국인들은 김기덕의 모든 말과 행동, 영화를 철저히 무시하지만 서구인들은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인양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런 소중한 존재 김기덕을 영웅으로 떠받든다. 체코의 칼로비바리 영화제에선 김기덕 전작을 보여주는 회고전을 한바도 있다. 김기덕에겐 어떤 정신이 있다. 그가 부르는 민족의 노래 아리랑처럼 한 맺힌 심사를 풀어헤치고 질곡의 삶을 극복해나가는 의지 같은 것 말이다. 김기덕 정신, 투박한 자기 것을 소중해하고 투지로 밀고 나가는 정신, 그게 새삼스레 요즘 한국에 필요한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정재형 동국대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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