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는 1452년 세상을 떴다. 실록 졸기(卒記: 신하의 품행 등을 평가하여 적음)에는 이렇게 적혔다. “관대하고 후덕하며…정대하여 대체(大體)를 보존하기에 힘쓰고…중앙과 지방에서 우러러 바라보면서 모두 말하기를 ‘어진 재상’이라 하였다.” 그로부터 23년 뒤 또 한 명의 재상 신숙주가 숨졌다. 졸기에 적힌 그의 후평(後評)은 이랬다. “신숙주는 인품이 고매하고 너그러우면서 활달했다. 경사를 두루 알아 의논할 때 항상 대체(大體)를 파악했고, 대의를 결단할 때는 강물을 터놓은 듯 막힘이 없었다.”
헷갈릴 정도로 비슷하다. 어진 품성에 대한 극찬이 그렇고, ‘대체를 파악했다’는 문구까지 그렇다. 공직에 남겨놓은 이력도 차이가 없다. 황희는 2명의 왕(태종·세종)을 모시며 24년간 재상을 했다. 신숙주도 2명의 왕(세조·성종) 밑에서 영의정을 했다. 굳이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을 트집 잡더라도 둘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도 역사의 결론은 정반대다. 황희는 ‘조선 최고의 명재상’이고, 신숙주는 ‘역사 최악의 변절자’다. 졸기의 평가가 같고, 살다간 이력이 같지만 역사의 평가는 이렇게 냉정하다.
그 기준의 한가운데 정통(正統)에 대한 지조가 있다. 황희는 ‘정통’ 양녕대군 폐위에 ‘폐장입유(廢長立幼)는 재앙을 부른다’며 반대하다 귀향 갔다. 신숙주는 ‘나와 함께 중국으로 갑시다’라는 수양대군의 제의를 받아들여 ‘정통’ 단종을 제거하는데 발을 걸쳤다. 이 두 건의 선택으로 갈라진 역사의 평가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박포(朴苞) 아내와의 ‘스캔들’이 알려져도 황희는 여전히 명재상이고, 일본 대마도주와의 ‘담판외교’가 소개돼도 신숙주는 여전히 변절자다.
통합으로 포장되는 변절
500년쯤 지난 지금, 대선(大選)판에 황희 옷을 걸친 신숙주들이 마구 뛰어다니고 있다.
‘이 사람’은 엊그제까지 안철수 멘토였다. 청춘 콘서트장을 누비며 안철수 마케팅에 앞장섰다. 그 전에는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의 최고 브레인이었다. 선거전문가라는 닉네임을 달고 이회창, 이명박의 곁을 지켰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문재인 후보 쪽으로 건너갔다. 어깨엔 그럴듯한 완장이 채워졌다. TV에 나와서 한다는 말이 참 실없다. “문재인 후보를 두 시간 정도 만났다. 대화를 하면서 통합을 이뤄낼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합류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정말 억울할 것이다. 믿어주는 사람이 그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다.
‘저 사람’은 호남 민주당의 거물이다. 네 번의 국회의원(11대, 13·14·15대)을 하는 동안 늘 DJ(김대중) 곁을 지켰다. 대통령 비서실장이란 이름표를 달고 청와대까지 따라 들어갔다. DJ에게 정치 민주화는 곧 박정희 대통령의 퇴진이었다. 박근혜 후보는 박 대통령의 딸이다. 그런 ‘저 사람’이 박 후보에게 갔다. 역시나 완장이 채워졌다. “언제까지 동서로 갈라설 건가. 국민대통합 없이는 우리가 한 발자국도 전진하기 어렵다.” 그가 한 말인데 아귀가 맞지 않는다. ‘독재 박정희’에 맞섰던 그의 40년이 나라를 동서로 분열시킨 분열의 정치였다는 얘기가 된다.
왜 두 사람만 트집 잡느냐고 억울해할지 모른다. 사실은 이들 말고도 많다. 아무리 봐도 위장 취업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안철수 후보 측 인사도 있다. 평생 민주당을 지켜오다가 엊그제 새누리당에 ‘집단 투항’한 무리들도 있다. 변절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이들 역시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이 사람’과 ‘저 사람’만을 붙들고 늘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두 명이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이니 국민대통합위원장이니 하며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를 하나로 통합시킬 대단한 상징처럼 떡하니 등장해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데 말이다.
대선판에 요지경 통합쇼
두 달 있으면 선거다. 이어 논공행상이 따라 붙을 거다. ‘이 사람’과 ‘저 사람’에게도 공(功)에 따른 상(償)이 주어질 거다. 바야흐로 민주당 출신 노(老)정객이 박근혜 대통령 밑에서 한 가닥 하고, 한나라당 출신 노정객이 문재인 대통령 밑에서 한 가닥 하는 날이 올 거라는 얘긴데…. 그걸 어떻게 봐줘야 할지 벌써 고민이다. 관대함과 후덕함으로 통합을 이뤄낸 ‘황희’? 발 빠름과 셈법으로 영화를 챙겨간 ‘신숙주’? 답이 뻔한 질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시답지 않은 걸 문제랍시고 던져본다. 지금 대선판의 ‘통합 쇼’가 그만큼 요지경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500년만에 대선으로 부활한 신숙주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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