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방분권이 정수장학회, NLL 등의 첨예한 이슈 가운데에서도 또 하나의 주요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대선 후보들이 지방분권을 절실하고 절박한 과제로 생각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방분권’이 단지 대선을 타고 지나가는 ‘바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참여연대나 경실련 등 훌륭한 시민단체들도 지방분권, 균형발전이라 하면 다 옳은 말이라 하지만 절실한 과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한 대선 후보의 지적은 우리 모두가 생각해 봐야할 일이다. 보다 냉철한 현실 파악과 더 구체적인 해답이 필요하다.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조세수입 구조는 8:2인데 반해 지출구조는 4:6이다. 수입은 없는데, 쓸 곳은 많다는 얘기다. 이러한 악순환으로 지난 20년간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는 1992년 69.9%에서 2011년 51.9%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절반 이상의 지방정부가 공무원 월급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앙정부는 지방분권 차원에서 복지사업 이관을 추진하고 있지만, ‘예산’ 없이 ‘사업’만 내려 보내 지방정부의 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얼마 전 이슈화 됐던 0~2세 무상보육 지원정책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뿐만 아니다. 지방정부는 지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도시계획, 개발제한구역 규제 등 주요 정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없다. 현재의 법률 구조상 제대로 된 자치조직권 및 인사권도 없다. 일할 수 있는 ‘수단’도, ‘사람’도, ‘예산’도 다른 이의 손을 빌려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창의적인 행정을 펼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완전한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지방분권운동 과제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지방자치의 가치와 본질 회복을 위한 관련법의 제·개정이다. 특히 지방정부의 자치사무 규정과 같이 지방자치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법령이 우선한다는 단서조항으로 지방자치를 제약하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프랑스처럼 지방분권국가의 이념을 명기한 헌법 개정까지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은 국세를 지방세로 대폭 전환,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세목과 세율을 결정할 수 있는 재정권 확보 등 완전한 지방자치를 위한 ‘재정분권’이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법제도적으로 자치권이 부여돼 있어도 재원의 자력조달이 어렵다면, 재원을 지원해주는 존재(중앙정부)로부터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자치조직권과 자치인사권 확보, 실제 실행력을 갖는 대통령 직속 또는 대통령이 위원장인 위원회 설치, 수도권의 합리적 관리, 청와대 내 분권담당 수석실 등 분권 추진 및 실행기구 마련 등의 의제들도 힘써야 할 과제다.
중요한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했을 경우 그 행정적 위상이 내려가거나 일자리가 줄어들게 된다고 생각하는 중앙정부 관료, 지방정부의 위상이 강화되는 만큼 영향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일부 국회의원, 중앙정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긴 동아줄이 끊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기업 등 분권과 자치가 달갑지 않은 세력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신념을 보호하기 위한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지방분권은 우리의 절실한 바람만큼이나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다. 분권과 자치에 강한 신념을 가졌던 대통령조차 쉽지 않았던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제 지금처럼 중앙정부가 주도적으로 국가를 이끌어가는 메카니즘을 가지고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성장 그리고 시민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국가 시스템 자체가 분권형 국가로 바뀌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지방분권형 국가를 원한다.
김윤식 시흥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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