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단한 작가가 아니다”
“성서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짧고 얕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모름’이 ‘앎’에의 문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 성서는 읽기보다는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부추기며 조금씩 써온 글로 책 한 권이 되었다.”
소설가 오정희(65)가 신앙의 최고 법전, 성경을 주제로 한 ‘오정희의 이야기 성서’(여백 刊)를 펴냈다.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그녀. 무려 45년이라는 오랜 세월 변치 않는 필명을 떨치고 있다. 그런 그녀가 느닷없이 ‘성경’을 들고 독자들 곁으로 찾아왔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편안한 호흡을 자랑하는 간결한 문장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에 튼튼한 뿌리를 내린 작가에게 성경은 어떤 존재일까? 10월 19일 오후 서울에서 그를 만났다.
“성서는 내가 반드시 거쳐야 할 세계”
10여 년의 산고 끝에 펴낸 작품
첫 인사를 건네는 그녀. 오랜 시간 작가로서 여자로서 숱한 계절을 반복해서였을까. 얼굴에는 사계절이 숨어 있었다. 빠알간 립스틱을 바른 그녀의 입술은 봄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그녀의 미소는 시원한 여름을 닮았다. 눈, 코, 입 주변에 깊게 터를 잡은 주름은 쓸쓸한 가을을 닮은 듯 했고, 하얀 눈이 내려앉은 흰머리는 춥디추운 겨울산을 닮아 있었다.
환갑을 훌쩍 넘긴 작가에게도 오래된, 그리고 묵은 숙제가 있었다고 했다.
“성당을 다닌 지 10여년 쯤 됐다. 성서를 한 구절, 한 구절 묵상하며 통독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오래전부터였으나 실행이 어렵지 않았다. 번번이 앞부분에서 맴돌다 멈춰지거나 부분 부분 뽑아 읽는 데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서 쓰기를 시도했으나 그 역시 용두사미가 되곤 했다.”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로 작가는 성경과 좀 거리가 있어 보였다. 게으름을 부리면서도 내심 성경과 친해질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작가는 ‘그 때’를 기다리면서 생전 미당 서정주 선생이 “문학을 하려면 반드시 성서를 읽어야 한다. 성서를 모르면 서양의 문학과 서양인들의 정신세계를 알 수 없다”는 말씀을 기억했다.
그녀에게 ‘성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세계’로 각인돼 있었던 것.
“가톨릭 신자로서 지난 2003년부터 6년여 동안 ‘가톨릭 다이제스트’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노아의 방주, 카인의 살인, 모세의 이집트 탈출기 등 구약성서와 예수의 탄생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하는 신약성서의 이야기를 63개 일화로 정리했다. 이 책은 오로지 성서를 성실히 읽고, 만나고 싶다는 내 마음의 소산이다.”
성서와 작가 오정희의 만남이다 보니 독자 입장에선 독창성이나 새로움이 없어 다소 밋밋할 수도 있을 터. 이에 대해 “나는 내게 소설을 쓰게 함이란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는, 살아가는 일의 슬픔과 쓸쓸함이라고 표방하기도 하는데 성서를 찾아 읽는 마음 또한 세상에 가득한 고통과 슬픔의 불가해함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글을 쓰면서 부담보단 오독을 하지 않을까,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거 아닌가 싶어 조심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작가는 성경의 가장 중심적인 ‘이야기’만 추려 거기에 친절한 해석과 주석을 달았다. 꼭 신자가 아니어도 읽기에 부담이 없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재구성함으로써 자칫 ‘어려운 책’이 될 수 있는 성경을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되살려냈다.
“작가로서 나는 직무유기다”
작가 오정희는 자신을 “느리다”, “게으르다”고 말한다.
이번 책도 처음 원고 작업을 시작한 때로부터 벌써 10여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굳이 책으로 묶겠다는 생각이 없었기에 자유로웠다고 한다.
책이 나오고 난 지금의 심정을 오 작가는 “문제집 한 권을 끝낸 초등학생처럼 뿌듯하고 마음이 가볍다”고 표현했다.
느리지만 오랫동안 ‘장수’하는 그녀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맏언니 격이다.
1947년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나 1970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작가는 1979년 ‘저녁의 게임’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82년 ‘동경’으로 제15회 동인문학상, 1996년 ‘구부러진 길 저쪽’으로 오영수문학상, 1996년 ‘불꽃놀이’로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맏언니지만 대중적인 활동은 다소 부족한 편이다. 다작(多作)과도 거리가 멀다. 대신 과작(寡作)으로 유명한 작가다.
“많이 쓰고 싶은 사람이 있고, 많이 써야 할 사람이 있고, 또 식사 양이 많은 사람도 있고, 식사 양이 적은 사람도 있다. 작가로서 나는 직무유기다. 나에게 문학은 삶의 일부다. 나는 절대 대단한 작가가 아니다. 단 문학과 나의 마주보는 시간과 공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을 뿐이다.”
게으르다는 핑계를 대는 작가는 절대 게으른 것이 아니었다. 단지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것일 뿐. 절대적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는 직업인만큼 누군가와 어울리거나, 웃고 떠들며 술 마시고 여행 가는 것을 지양한다고 한다.
“내 작품에 대한 환상이 없다. 그리고 내 작품이 영원하리라 믿지 않는다. 단순히 내가 쓰고 싶은 글 쓰는 것으로 만족한다. 독자가 작가를 선택할 권리가 있듯이 작가도 독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모든 이가 내 작품을 읽지 않아도 좋다. 그리고 나도 내 옛 작품을 안 읽는다. 지나간 길을 자주 돌아보면 뭐하나. 내가 앞으로 써야 되는 작품에 대한 고민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항상 힘들고 아픈 것이 청춘”
작가로서의 오정희는 생각보다 쿨 했다. 엄마 오정희도 굉장히 쿨 했다고 한다. 1남1녀를 강원도 춘천에서 키우면서 유명작가라는 타이틀로 아이들을 그늘지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아들이 수능기출문제집에 나온 제 작품 ‘저녁의 게임’을 읽었는지 엄마가 쓴 글이 맞냐고 묻더라.(하하) 아이들이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엄마가 위치를 알게 된 것 같다.
고등학교 전까지 아들과 딸에게 나는 그저 ‘알기도 한 작가’였다. 내 작품을 아이들에게 읽어보라고 한 적도 없다.”
지금은 아들, 딸을 외국에 보내고 강원도 춘천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독자 또는 동료 작가, 후배들과 스킨십이 부족한 것 같아 보이지만 작가는 후배 작가들에게 인기 있는 선배 작가다.
문청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오 작가의 단편소설 한번쯤은 필사해본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녀의 작품을 읽고, 쓰고 있다.
“작가는 자기만족도는 높은 직업이다. 하지만 고달픈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춘문예 심사를 하면서 당선자들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이라고 말이다.(하하)” 그러면서 오 작가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아픈 손바닥에 청사진을 놓고 사는 게 아니라 삶이라는 것이 오리무중이고, 딱 걸은 한 발짝만큼만 보이는 게 인생이니 본인 존재감을 소중히 여기고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가야 한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춘들은 사회적으로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만 청춘은 항상 힘들고 아프다.”
인천 신흥초등학교 시절 글짓기로 명성을 날렸던 소녀 오정희는 한국 문학계 큰 뿌리로 성장해 2012 아픈 청춘들과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성서를 통해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을 존재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임을 추출해 내고 있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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