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대우받지 못해 본 자의 넋두리

인사동에 새로운 대규모 전시장이 생겼다는 반가운 소식에 길을 나섰다. 둘러보니 오랜 공사 기간을 거쳐 막 개관한 전시장이라 아직 정돈되지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현대적 감각의 전시공간과 기둥 없는 높은 천정이 인상적이었다. 반투명 유리를 통해 은은히 들어오는 햇살과 고급스런 마감재는 잘 조화되었고 동선은 무리가 없었다. 인사동의 요지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 서인사 마당 주차장 옆이라는 위치 역시 미술애호가의 접근을 용이하게 해주는 요인이었다. 쾌적한 전시장, 편안한 동선, 우수한 접근성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 전시장이라 기분이 좋았고 조악한 싸구려 중국물건이 넘쳐 나는 인사동에 새로운 명소가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어 이 방면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 반가웠다.

좋은 인상이 불쾌감으로 변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러 층의 다양한 전시를 차례로 본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니 현대 중국 목판화가 여러 점 걸려 있었다. 한참 감상을 하고 있는데 덩치 큰 한 남자가 나타나 “내려가시죠. 여기는 전시장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멋진 전시장의 불친절

그의 위압적인 말투와 권위적인 태도에 잠시 멍해졌지만 건물 입구는 물론 복도, 엘리베이터 등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에 ‘중국현대목판화전’이 4~5층에서 개최되고 있다는 알림을 기억해냈다. 마침 근처에도 포스터가 붙어 있기에 그 내용을 가리키며 “5층에도 전시가 있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5층에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는 본 적 없습니다”하니 “그런 안내를 하지 않은 것은 인정합니다만 어쨌든 5층은 전시가 없으니 내려가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이 정도면 참을 만한데 ‘그 자’는 몇 걸음 더 나갔다. “이런 일에 따지는 걸 보니 평소에 대우받지 못하셨나 봐요” 무례하고 황당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해대는 그 인간에게 폭발하고 말았다. 1층으로 내려와 안내데스크 앞에서 옥신각신 하다보니 어떤 경우에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 유형이 있다던데 대략 이런 사람을 두고 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얘기했다가는 혈압만 올라갈 것 같아 “잘 해보시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서는 데 부아가 치밀어서 다신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살다보면 길거리에서건 식당에서건 무례한 행동을 언제고 당할 수 있기에 그때마다 따지거나 시정을 요구한다면 얼마나 많은 승강이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따지지 않고 대강 넘어가 주는 게 ‘인간성 좋은 사람’ 또는 ‘무던한 사람’으로 보이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단순한 친절의 문제가 아니고 시스템과 구조 등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다. 문화 사업은 문화와 사람에 대한 사랑이 우선 되어야 하기 때문에 친절과 배려는 기본이다. “고객은 왕이다” 식의 무지막지한 이용자 중심의 사고방식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전시장을 찾아 준 관람객, 곧 문화를 사랑하는 이에 대한 친절과 배려는 문화 사업하는 이라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내용이자 최소한의 전제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이다.

소프트웨어의 문제

우리는 건물을 번듯하게 새로 지으면 이른바 ‘개발’도 잘 되고 환경도 일신했으니 사무처리 등 운영도 잘될 것이라는 환상을 갖곤 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라는 점을 쉽게 잊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멋진 외양과 호화스러운 대리석 마감재도 중요하지만 이를 운영하는 시스템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가고 싶은 공간이 될 수도 흉물이 될 수도 있다. 결국 문화는 문화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이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김상엽 건국대 연구교수·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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