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에서 놀자]<15>광주문화원 ‘광주 남한산성문화제’

세계문화유산 등재 앞두고 2천년 역사를 한눈에

“말짱 도루묵!” 우리는 흔히 어떤 일이 헛수고로 돌아갔을 때 이렇게 말한다. 얼핏 ‘도루묵’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들어본 것 같지만 누가, 언제, 어디서 사용하게 됐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병자호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답이 나온다. 조선 인조 임금이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갔다가 ‘묵’이라는 생선을 먹고 맛이 좋아 ‘은어’로 부르도록 했다. 임금은 은어의 맛을 잊을 수 없어 병자호란이 끝난 뒤 남한산성을 다시 찾았지만 처음과 같은 맛을 느낄 수 없어 다시 묵으로 부르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도루묵’으로 불리고 있는 것. 이처럼 남한산성은 외적을 물리치는 중대한 군사 역할과 함께 ‘도루묵’이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남한산성의 2천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제17회 광주 남한산성문화제’가 지난 10월19~21일 성대하게 펼쳐져 남한산성 탐방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남한산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어 3일간의 대장정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뜻깊은 축제로 기억되고 있다.

■백제 온조대왕과 이서장군을 혼을 기리다

백제를 창건한 온조대왕 불굴의 의지와 남한산성 축성 총 책임자였던 이서장군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숭열전 제향이 남한산성문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제향의식은 매년 음력 9월5일 온조왕과 이서 장군의 신주를 모셔놓은 숭열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에서 거행된다.

남한산성문화제를 주최하는 광주문화원 측은 두 분의 뜻을 문화제에 녹여내기 위해서 매년 양력 9월 말에 열었던 문화제를 올해 처음으로 제향식에 맞춰 개최, 남한산성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제향의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신주 앞에 폐백을 드리는 전폐례(奠幣禮), 벼슬아치가 신위 앞에 첫 술잔을 올리는 초헌례(初獻禮), 아헌관이 신위 앞에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례(亞獻禮), 종헌관이 마지막 술잔을 올리는 종헌례(終獻禮), 신에게 올렸던 술을 마시는 음복례(飮福禮), 폐백과 축문을 태우는 망료례(望燎禮)의 순으로 진행됐다. 여기에 악공들의 잔잔한 음악 연주가 더해지면서 유림, 탐방객 등도 경건한 마음으로 함께 봉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10년 만에 복원된 남한산성 행궁에서부터 남문행사장까지 행렬하는 호궤의식 재현이 진행됐다. 조억동 광주시장, 이성규 광주시의회 의장, 남재호 광주문화원장 등은 말을 타고 취타대, 의장대 등과 이동을 하며 과거 남한산성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해산하기 전 임금이 노고를 치하하는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탐방객들은 의복을 갖춰 입은 행렬을 가만히 지켜보다 이내 신기한 듯 함께 발걸음을 옮기면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남한산성 분위기를 조성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온 김수정씨(42·여)는 “교과서로만 배우는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쳐줄 기회가 있어 아이들과 함께 남한산성을 찾았다”며 “실제로 이뤄졌던 것을 아이들이 볼 수 있어서 뜻깊은 하루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채로운 문화행사는 ‘남한산성 알리미’

숭열전 제향, 호궤의식 재현 등 역사적 의식이 끝난 뒤에는 그야말로 참가자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남한산성문화제 알리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산성백일장, 남한산성행궁 사생대회, 휘호대회가 열리는 곳에서는 그동안 실력을 갈고 닦았던 학생들의 남한산성을 주제로 기량을 뽐내는 장이 펼쳐졌다. 탁본체험, 떡메치기, 무형문화재, 정보화마을, 도자 체험행사 등 다채롭게 마련된 행사에는 가족 단위 참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줄을 지어 기다리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남한산성행궁 사생대회에 참여한 이중회군(9)은 “학교에서 여기로 소풍은 많이 왔는데 그때는 별로 재미없었다”면서 “오늘은 남한산성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놀 것이랑 먹을 게 많아서 진짜 좋다”며 즐거움을 나타냈다.

특히 곤지암고, 광주 중앙고, 광남고, 경화여자e비지니스고 등 광주지역 고등학생 120명이 참여한 ‘남한산성 도전 골든벨’이 이번 문화제의 하이라이트다. 학생들은 환호와 탄식을 쏟아내며 남한산성과 광주시의 역사에 대해 줄줄이 출제되는 문제를 풀어나갔다.

천주교의 발원지인 ‘천진암’을 맞추는 여섯 번째 문제에서 반 이상의 학생들이 탈락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사회자는 센스있게 패자부활전을 이끌어내며 광주지역 고등학생들의 ‘말춤’ 플래쉬몹을 요구했다. 춤을 열심히 춘 자만이 자기 자리를 되찾을 수 있다는 조건을 달고 말이다. 학생들은 각자 개성 있는 말춤을 선보이며 이날 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에게도 큰 웃음을 안겨줬다.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난 김경태군(17·중앙고1)은 광주의 동물, 조선시대 일반 서민까지 사용했던 도자기, 광주 소속 읍·면·동 쓰기 등의 정답을 적어내면서 결국 골든벨을 울렸다.

김군은 “일주일 정도 남한산성과 광주 역사 책을 보며 골든벨을 준비했다”며 “여태껏 몰랐던 광주시와 남한산성에 알게 되고 상금까지 받게 돼서 일석이조”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와 함께 평양 꽃바람 예술단 공연, 전통줄타기 공연, 산성음악회 등이 펼쳐져 문화제를 찾은 10만여명의 관람객들은 높은 가을 하늘 아래 짙어가는 단풍 속에서 남한산성문화제를 만끽했다.

■남한산성문화제의 모태 ‘대동굿’

문화제 마지막 날인 21일에는 남한산성 문화제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대동굿이 펼쳐졌다. 대동굿은 원래 조선인조 2년(1624년) 남한산성을 축성하고도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려 참형 당한 이회 장군과 그의 두 부인의 억울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굿이었다.

하지만 광주시와 광주문화원이 남한산성대동굿을 중심으로 축제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1997년 남한산성문화제로 명칭을 바꾸고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비는 전통무속 행사로써 문화제의 일환으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날 대동굿은 광주, 하남 등 인근에 사는 무속인들이 함께 펼치는 큰굿으로 모두 12거리로 진행됐다. 거리마다 무속인들이 7~10명 정도가 나와 각기 다른 굿을 선보였다. 특히 비수 12개를 계단으로 만들어 놓고 한 계단식 타고 오르는 비수거리(일명 작두타기)가 진행될 때에는 관람객들이 이를 구경하기 위해 몰리며 장사진을 이뤘다.

관람객들은 손을 모으고 조마조마한 모습을 보이다가 무속인이 아무 탈 없이 거리를 끝내자 박수를 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 매년 문화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소원지태우기가 이번 축제의 끝맺음을 알렸다. 달집에 꽂혀 있는 탐방객들의 소원지에 불이 붙여지자 이들은 광지원농악단의 대동놀이 가락에 맞춰 강강술래를 하며 하늘로 올라가는 자신들의 소원을 바라봤다.

김진영 광주문화원 사무국장은 “남한산성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1호부터 6호, 국가사적, 자연풍경 등 모든 게 갖춰져 있다”면서 “매년 시행착오는 있지만 광주를 알리고 남한산성을 찾는 탐방객과 지역민이 어울리는 축제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혜준기자 wshj222@kyeonggi.com

사진= 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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