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大選, 경기도가 중심되긴 다 틀렸다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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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이천 시민들이 모였다. 칼바람 속에 만장(輓章)이 나부꼈다. 놋그릇에 담긴 찬물을 마시는 대열 사이로 구호가 이어졌다. “구리는 인체에 아무런 피해가 없다. 하이닉스 공장 증설을 막지 마라.” 조병돈 시장이 삭발하고 이규택 의원이 삭발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같은 날, 정우택 충북지사(현 새누리당 최고위원)가 기자회견을 했다. “하이닉스 청주공장 이전으로 국가 균형발전은 물론 충북도가 반도체 산업에 중심지가 될 것이다.”

2011년 11월 16일. 과천 시민들이 투표장으로 향했다. 여인국 시장을 끌어내리기 위한 투표였다. 정부의 보금자리 주택 계획에 서명했다는 게 이유다. 최초 서명일인 5월 17일에 시작된 파행은 6개월이나 계속됐다. 투표율이 33%에 미달하면서 시장은 복귀했다. 하지만 시민과 시민, 시민과 시장 간에 벌어진 간극은 봉합되지 않았다. 여 시장의 ‘8년 공화국’을 만신창이로 만든 근본적인 이유, 그건 세종시로 빼앗긴 청사 이전의 후유증이었다.

나머지 동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이어졌다. 성남에서는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LH(주공+토공), 한국도로공사 등이 줄줄이 떠났다. 상권이 무너져 내렸지만 나주로 가고, 대구로 가고, 진주로 가고, 김천으로 가는 이삿짐 앞엔 속수무책이었다. 농촌진흥청, 국세공무원교육원 등 10여 개 기관을 전라도로 보내고 제주도로 보내는 수원의 상권도 마찬가지다. 경기도에서만 52개 공기업이 이렇게 떠났고 12개 시군이 힘들어졌다.

경기도 공약 안 찾는 경기도민

이천 시민이 길거리로 나선 이유? 과천 시민이 시장을 탄핵한 이유? 성남 수원 시민이 상가 문을 닫아건 이유? 간단하다. 기업 지방 이전 정책이고, 정부청사 세종시 이전 정책이고, 공기업 지방 이전 정책이다. 이른바 ‘국가균형발전’으로 통칭되는 정책들이다. 그런데 이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무지막지한 포탄은 갑자기 날아든 게 아니다. 장약(裝藥)부터 탄착군(彈着群)까지 미리 예고됐었다.

2002년 대선판을 보면 다 나와 있다. 하이닉스 증설 억제, 과천 청사 이전, 농촌 진흥청 이주. 다 있다. 이천 과천 성남 수원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들어 있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이상했다. 그런 공약을 내놓은 후보가 이겼다. ‘경기도를 지키겠다’던 후보보다 6.47%나 더 얻었다. ‘전국 차이’가 2.3%였으니 ‘경기도 차이’ 6.47%가 승패를 가른 꼴이다. 한 마디로 경기도의 선택이었고 경기도 유권자의 자업자득이었다.

10년 전 과거사가 아니다. 그때 그 공약이 2012년 경기도를 옥죄고 있다. 16대 대선 때의 얘기가 아니다. 그때 그 경기도 외면 분위기가 18대 대선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부산에 간 박근혜 후보가 이렇게 말했다. ‘해수부를 신설하면 청사는 부산에 두겠다.’ 해양도시 인천에서는 그런 얘기 한 적 없다. 전주와 진주에 간 문재인 후보가 말했다. ‘토지주택공사를 이곳(전주 진주)으로 옮기겠다.’ 그 사무실을 빼앗긴 성남에는 아무 얘기도 안 했다. 안철수 후보측에서는 이런 말을 했다. ‘청와대를 이전하겠다. 장소는 국민의 뜻을 물어 결정하겠다.’ 다 가고 달랑 남은 게 청와대인데 그마저 빼겠다는 얘기다. 유력 후보라는 세 사람이 지금 이러고 다닌다.

경기도 공약 안 내는 대권후보

바보다. 경기도 유권자가 바보다. ‘反 경기도’ 공약을 겁 없이 떠드는 후보들을 그냥 쳐다만 본다. 경기도에 도움될 공약을 내놓으라고 추궁하지도 못한다. 경기도에 손해되는 얘기를 왜 하느냐고 따지지도 못한다. ‘내가 세종시를 지킨 사람입니다’라고 자랑하는 박근혜 후보에게 ‘과천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야 하는 거다. ‘국가균형발전의 출발은 우립니다’라고 자랑하는 문재인 후보에게 ‘앞으로 5년도 또 그럴 거냐’고 물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그런 목소리가 없다.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안타깝다. 이제는 경기도가 중심에 서야 하는 건데…. 경기도에 도움되는 후보를 찍어야 하는 건데…. 경기도가 힘들어지면 내가 힘들어지는 건데…. 경기도 경제가 나빠지면 내 회사가 부도나는 건데…. 경기도 실업률이 높아지면 내 자식이 안방에 들어앉는 건데…. 경기도를 생략하고 내달리는 대선 ‘D-’는 벌써 3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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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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