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공성훈의 ‘비행기구름’

아침저녁의 날씨가 시나브로 차다. 덥고 추운 것을 떠나서 차고 시리다. 옷겹을 단단히 조이고 밖으로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 낯을 때리고 몸을 쑤신다. 겨울바람이 하는 일을 늦가을 새벽바람이 하는 일이니, 가을꼬리가 짧은 셈이다.

여명과 어스름은 가을꼬리보다 더 짧다. 그것은 찰나와도 같아서 낮과 밤사이를 순식간에 지나쳐 버린다.

옛 어른들이 입으로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바로 이 시간들이 도깨비들의 시간이다. 온갖 신화와 전설이 잉태하고 자라고 소멸했던 시간들이 바로 그 찰나에 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찰나의 신비를 따르지 않는다. 그런 시간들이 우리 삶에 있는지조차 궁금해 하지 않는다.

공성훈의 ‘비행기구름’은 어스름이 깔리던 순간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푸른 하늘에 비행기 지나간 자국.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그 자국이 아니라 전체 풍경이다. 그는 최근 여명과 어스름에 속한 풍경들을 그렸다. 바다와 산과 하늘이되, 파도와 나무와 구름 따위의 세목들이 찰나를 이루는 풍경들을. 그 풍경들에서 우리는 여명과 어스름이 이루는 신화적 시간의 영적 순간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의 전시에서 ‘바다’를 본 적이 있다. 바다 그림들은 어두웠으나 그것을 보는 나의 ‘몸각’은 낱낱이 소름이었다. 그림의 색들은 푸르렀으나 그것을 보는 나의 눈은 시퍼렇게 멍들었다. 그의 풍경은 간헐적으로 나의 신체를 공격해 들어왔다.

바다였는지 바다의 색이었는지 아니면 그 그림들 사이를 떠도는 낮은 바람이었는지, 그것들은 내 눈의 안막을 넘어와 심연의 창살을 뒤흔들었다. 전시장에 내걸린 작품들은 그렇게 내 안의 것들을 뒤흔들어서 출렁거렸다.

나를 채운 바다는 마치 거대한 항해의 한 복판에서 크게 넘실거리는 듯하였다. 그러나 전시장을 빠져 나오자 그 모든 순간들은 까마득한 찰나였다. ‘비행기구름’의 느낌도 다르지 않다.

공성훈의 회화는 자연의 거대 환상이나 숭고 따위가 아니라 가장 현실다운 현실의 초상과 직면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관념의 풍경들을 지우고 그 풍경의 진실 속으로 들어가면, 공성훈의 풍경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순간순간 상실한 일상이다.

삶은 언제나 판타지로 가득했고, 비현실과 초현실로 충만했으며 숭고했다. 그것을 체험하지 못한 시간들이 길어졌을 따름이다. 사실 그동안 회화는 ‘회화론’에 갇혔고 미술은 미학에 갇혀있었잖은가! 공성훈의 풍경을 따라 현실로 직립해 들어가 볼 일이다.

김종길 미술평론가 · 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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