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장(16)] 박상률 작가

진도출신, 58년 개띠, 진도개 이야기

고3 아들이 시 한편을 외우면 용돈 만원을 주는 아빠가 있다. 아빠는 주장한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한글 안 배워도 된다”, “전집은 절대 사주지 마라.

유아기 때 책 5권이면 충분하다”고. 영어유치원 보내면서 중국어까지 가르치는 요즘 강남엄마들은 이 같은 교육방법에 콧방귀도 안 뀔 게다.

이 아빠 뭐하는 사람일꼬. 고교 졸업 때까지 자국의 명시를 100편 이상 외우게 한다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이라도 되는 걸까. 대한민국 ‘청소년문학의 1인자’ 박상률 작가 이야기다. 작가는 전라남도 진도 출신이다. 사람보다 개가 귀한 진도에서 자란 작가는 ‘개’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써왔다.

최근 발간한 초등학교 1~3학년을 위한 동화책 ‘개조심(창비刊)’도 개가 주인공이다. 역시 ‘58년 개띠’ 작가답다. 지난 11월 6일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집필실에서 작가를 만나 굴곡 많은 대한민국 58년 개띠로 살아온 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진돗개가 아닌 ‘진도개’를 고집하다

작가의 고향 진도는 재미있는 동네다. 진도에선 세 가지 자랑일랑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소리 잘한다, 그림 잘 그린다, 글씨 잘 쓴다. 그리고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지만 진도개 삼 년이면 소리를 한다. 또 가끔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쓸 줄 안다고 한다.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 하겠지만 작가에게 개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진도에서 진도개는 사람하고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 때론 사람보다 나은 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건 개가 사람보다 나은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면 ‘고것이 새끼 낳더니만 입맛이 영 없는 갑서, 된장국도 안 먹고 미역국도 안 먹고. 아무래도 노루 뼈라도 고아서 멕어야 쓸란갑다’며 이녁 안부는 뒷전이고 개 안부만 길게 하신다.(하하)”

동화책 ‘개밥상과 시인 아저씨’, 그림책 ‘애국가를 부르는 진돗개’, 그리고 올 봄에 낸 ‘개님전’에 이어 신간 ‘개조심’까지. 그야말로 ‘개’ 전문작가라 불러도 좋을 법 하다.

박상률은 왜 이렇게까지 개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리고 표준어 진돗개가 아닌 ‘진도개’로 표기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한 기자의 질문공세에 작가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굳이 순종이냐, 잡종이냐를 구분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저 진도에서 나고 진도에서 자라 진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 같은 진도개의 삶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답답한 아파트에 갇혀 목줄을 하고 사료를 먹고 사는 진돗개가 아닌 진도 시골마당에서 광 속의 쥐를 잡고 별미 중의 별미 아기 똥을 핥아먹고 크는 평범한 진도개가 때론 사람보다 나은 노릇을 하는 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그리고 진도에는 보신탕집이 없을 겁니다.(하하)”

“아직도 성장 중”

박상률은 원래 시인이다. 1990년 한길문학에 시 ‘진도아리랑’을, 동양문학에 희곡 ‘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인이지만 집필활동은 광범위하다. 시, 소설, 동화, 희곡, 산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집필실에도 노트북과 데스크 탑이 4대가 구비돼 있을 정도다. 굳이 영역을 나누지 않는다.

특히 지난 10여년은 청소년소설을 붙잡고 뒹굴었다.

“요즘에야 출판계든, 문단이든 청소년문학이라는 말을 자연스레 들먹이지만 처음 청소년소설을 들고 나온 1990년대에는 굳이 청소년문학이 따로 필요하겠느냐는 생각들을 했다. 그 당시 청소년용 문학이라야 ‘중고생을 위한……’ 어쩌고저쩌고 하는, 일반 소설을 편집하거나 요약한 게 대세였다. 그 가운데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청소년을 위한 문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1997년 빛을 본 ‘봄바람(사계절刊)’을 시작으로 작가는 한국 문단에 새로운 청소년문학 열풍을 이끌었다.

작가를 ‘청소년문학의 1인자’로 등극시킨 ‘봄바람’이 벌써 열다섯 살이 됐으니 주인공 훈필이 보다 두 살 많은 형이 됐다. 또 청소년문학이란 물꼬를 튼 작품이란 타이틀도 생겼다. 그 세월 동안 작가는 흰머리가 나고 주름이 생기고 50년대 중년으로 달려가고 있다.

작가는 “청소년문학을 왜 하죠?”라는 질문에 주저없이 대답했다. “내가 아직도 성장 중이라고.”

그러면서 “내 안에 늘 함께하는 청소년이 있어서였다. 달리 말하면 그 시절을 여한 없이 살아내고 마침내 그 시기와 완전한 이별을 하고 어른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고 고백했다.

나를 견디게 한 문학, 나를 배신하지 않을 문학

아직도 성장 중이라는 작가의 청소년 시절이 궁금했다.

“학교 갔다 오면 책 볼 새도 없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쉴 새 없이 일만 했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 또래로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처지였을 것이다. 지게질, 낫질 배우고 지네를 잡으러 가든 닭서리, 수박서리를 하든 소 풀 뜯기러 가든 개떼처럼 우르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가출 한번 안 해보고, 말썽 한번 안 피우던 모범생의 일탈은 대학 때 시작됐다. 전남대 상과대학 4학년 때 일어난 5ㆍ18은 그의 인생의 물길을 바꾸고 말았다.

“5·18은 개인의 삶 역시 시대의 흐름과 무관할 수 없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된 엄청난 사건이었다. 나도 여느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열흘 동안 도청과 금남로를 누비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고 겪었다. 그 다음해 졸업장을 들고 광주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몸은 그 도시를 빠져 나왔지만 나는 80년대 내내 광주(光州)의 ‘빛 광(光)’자만 봐도 가슴이 방망이질하였고 손이 떨리고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광주의 시대적 아픔이 박상률 작가의 시작이었다. 문학을 함으로써 그는 시대에서 얻은 울화병을 어느 정도 가라 앉혔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작가는 치료 중이다.

그는 문학을 통해 거창한 것을 꿈꾸지 않는다. 일단은 자신을 위해 문학을 한다고 했다.

“한없이 괴롭고, 외로울 때 문학은 나를 견디게 했고 세상과 소통하게 했다. 문학은 지금까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나 역시 앞으로 죽는 날까지 문학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개처럼 충실히 자기 자리를 지키기는 것이 진도 출신 58년 개띠 작가가 가져야 할 삶의 덕목이라 생각한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았지만 작가는 아직도 아이처럼 자신 앞에 펼쳐질 당장 내일이 궁금하고 기대된다고 했다.

자신의 존재를 청소년문학을 함으로써 더욱 극명하게 온몸으로 느낀다는 박상률. 어른이 아닌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글을 쓰고 있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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