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미국의 재정절벽, 진퇴양난의 딜레마

미국의 추수감사절부터 성탄절까지 이어지는 연말 쇼핑시즌이 예상외의 호조로 출발하면서 미국경제의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높아진 듯하다. 그러나 향후 미국경제가 회복세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용어조차 낯선 재정절벽(fiscal cliff)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재정절벽이란 미국정부가 그동안 취해왔던 확장적 재정정책이 올해 말로 종료되면서 내년부터는 자동적으로 긴축적 재정정책으로 선회하게 됨으로써 미국경제가 갑작스럽게 하강하는 즉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가 재정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줄이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취했다. 그 결과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정부부채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것도 상당 부분 이에 기인한다.

미국도 대규모 재정적자가 이어지고 이에 따라 계속 불어나는 정부부채 문제로 인해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는 위협을 받고 있는 처지이므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지속해 나갈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예산관리법’에 의해 올해 말로 감세조치를 종료하고 내년부터는 재정지출을 축소하기로 함으로써 재정건전화를 도모하기로 한 것이었다.

현재 미국경제의 회복세가 완만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다 유럽과 일본경제는 계속 암울하고 중국경제도 성장세가 둔화된 상황에서 미국이 재정절벽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주는 것은 명약관화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미국 정치권이 감세조치와 재정지출 확대조치를 어느 정도 연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대로 미국이 재정절벽을 회피해 경제회복세가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미국 나아가 세계경제의 안정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재정절벽 회피는 대규모 재정적자 지속과 정부부채 누적이라는 재정건전성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딜레마는 이미 유럽에서 시작됐다. 지금 재정위기로 허덕이는 그리스, 스페인 등에서 재정적자와 정부부채를 감축하고자 재정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늘리는 긴축적 재정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이들 국가는 수년째 마이너스 경제성장이 이어지는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 나라 국민들은 긴축적 재정정책, 즉 내핍정책을 철회하라고 시위를 벌이고 있고 반면 이 나라에 돈을 빌려준 채권국이나 국제기구들은 재정위기를 벗어나려면 더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경기회복과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두 가지 절실한 과제가 있다.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고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긴축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경기회복을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취한다면 재정건전성은 더욱 악화된다. 미국이 정치권의 합의로 재정절벽의 위험을 피한다면 이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긴축적 재정정책을 취한다면 경기는 더욱 침체된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경기회복은 단기과제, 재정건전성 확보는 중장기과제로 나누어 대응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은 진퇴양난의 딜레마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은 이러한 딜레마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경기상황이나 재정상황이 둘 다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다른 한 쪽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고 하나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둘 다 심각해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려울 만큼 절실한 과제라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책담당자들의 최우선 과제는 미리미리 위험요인을 찾아내고 이것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관리함으로써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윤면식 한국은행 경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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