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문화예술계에는 의미있는 기록이 탄생했다. 전 세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울려 퍼졌다. 국내 극장가를 찾은 관객수는 사상 처음 1억 명을 돌파했다. 올해는 또 우리의 소리 ‘아리랑’이 세계가 보존해야 할 인류무형유산으로 인정받은 해다. 이 기록들의 궤적을 되짚어본다.
■싸이와 강남스타일, 대중음악사를 새로 쓰다
올해 한국 대중음악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그 중심에는 싸이(35·본명 박재상)가 있다. 그 인기는 폭발적 아니, 폭발 그 자체였다.
올 여름 7월 15일 발표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국내 온라인 음원 차트를 석권했다.
이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말춤’을 추는 진정 즐길 줄 아는 챔피언 싸이는 언어가 다른 국가에서도 통했다.
유튜브에는 연일 싸이의 말춤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세계 각국의 동영상이 재등장하며 화제를 이어갔다.
그저 K팝 한류의 한 줄기로 여겨졌던 세계인의 관심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무섭게 확산, 마침내 한국 대중음악사를 새롭게 쓰는 기록을 탄생시켰다.
‘강남스타일’은 미국 등 30여 개국 아이튠즈 차트 1위, 영국 UK 싱글 차트 1위, 미 빌보드 차트 7주 연속 2위 등에 이름을 올렸다.
뮤직비디오도 단일 영상 중 처음으로 조회 10억 건을 돌파하며 유튜브 역대 ‘가장 많이 본 동영상’으로 기록됐다.
현지 마케팅이나 홍보조차 벌이지 않았던 가수 싸이는 뒤늦게 해외 러브콜로 각종 무대에 올랐다.
뉴욕에서 열린 마돈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고 파리 에펠탑 앞 광장에서 2만여 명과 말춤을 췄다. 오바마 미 대통령 앞에서도 말춤을 췄다.
가수 개인의 성공이 아니었다. 한국 대중음악의 가능성을 입증하며 전 국민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안겼다.
싸이와 강남스타일, 기록 행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MTV 유럽뮤직어워드(EMA)에서 베스트 비디오상,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에서 뉴미디어상, 기네스월드레코드(GWR)로부터 인증서를 각각 받았다.
최근 영국 콜린스 사전은 홈페이지를 통해 ‘2012년 올해의 단어’ 중 11월의 단어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발표하기도 했다.
4억명의 네티즌이 참여한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서 1억900만 표로 ‘올해의 인물 1위’에 등극했다.
싸이가 내년에도 이 같은 신드롬을 이어갈 지, 아니면 또 다른 한국 가수가 바통을 이어받을 지 기분 좋은 상상을 남긴 2012년 문화예술계 뉴스 중 단연 돋보이는 뉴스다.
국내 영화계에도 강남스타일로 발화된 대중음악계 열풍만큼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우선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다.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그 주인공이다.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김수현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개봉전부터 화제였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등 내놓는 작품마다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감독에 대한 관객의 신뢰 역시 흥행에 한 몫 했다.
7월에 개봉한 도둑들은 개봉 70일만에 1천302만명을 돌파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로는 1천298만명에 그쳐 1천301만명을 동원했던 ‘괴물’을 이기진 못했다.
도둑들의 흥행 열기가 가라앉기도 전에 이병헌 주연의 사극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새로운 강자로 떴다.
이병헌 최초의 사극 출연이면서 1인2역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탄탄한 연기력을 입증했다.
여기에 역사와 상상을 버무려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그린 영화는 대선 정국과 맞물려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비록 사극 영화 중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운 ‘왕의 남자’(1천230만)에 조금 못미치는 누적관객수 1천219만여명이 관람했지만, 한국 영화사에 1천만 관객 동원작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한 해에 두 편이나 1천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한국 영화사 처음이다.
더욱이 광해 흥행 열기가 사그러지기 전 조용히 등장한 ‘늑대 소년’이 650만 관객 몰이에 성공하는 등 400만 관객 동원 영화도 9편이나 됐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468만), ‘건축학개론’(410만), ‘내 아내의 모든 것’(458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91만), ‘댄싱퀸’(409만), ‘연가시’(451만) 등이다.
덕분에 지난 11월20일 올해 한국영화를 관람한 총 관객수는 1억명 돌파 기록을 세웠다. 2006년 한국영화 최다 관객수인 9천7백만9천여명을 넘어선 기록으로, 최근 1억500만명을 돌파하며 연일 기록 경신중이다. 인구 5천만 기준으로 봤을 때, 1인당 평균 2편씩 한국영화를 봤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같은 행복한 비명과 함께 ‘동반 성장’을 촉구하는 날 선 목소리도 나왔다.
1천만 관객을 동원을 영화 두 편 모두 대기업이 투자·배급함으로써 극장 상영관 독점 현상이 빚어졌다는 비판이다. 흥행하면 장기간 상영관을 차지하니 저예산 또는 독립영화는 힘써보지 못하고 밀려나는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2013년 한국영화계, 모두가 행복한 기록 경신의 해를 위해 대화가 필요한 때다.
전 세계가 한국의 ‘아리랑’을 인정했다. 아리랑이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5일 프랑스 파리 본부에서 열린 제7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아리랑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줄타기, 택견 등 총 15건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등재 대상 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를 포함한 후렴구와 가사로 이뤄진 노래군을 지칭한다.
흔히 ‘아리랑’은 강원도 ‘정선아리랑’과 전라도 ‘진도아리랑’, 경상도 ‘밀양아리랑’ 등을 3대 아리랑으로 꼽는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난 2009년 ‘정선 아리랑’의 등재를 신청했지만 국가별 심사 할당 건수 제한으로 심사에서 제외됐다.
이어 올해 6월 정선 지역의 아리랑에서 후렴구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끝나는 일련의 노래군으로 확대해 신청서를 제출했다.
제대로 들어맞았다. 아리랑이 특정 지역의 일부 전승자가 아닌 전국에서 전 국민의 가락으로 세대를 거쳐 재창조되고 다양한 형태로 전승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지역별로 독특한 아리랑이 존재하고 즉흥적으로 지어 부를 수 있다는 것, 지역과 세대를 초월해 광범위하게 전승된 점 등이 등재 확정에 힘을 실었다.
또 전 국민적 열망이 전달됐다는 평이다.
실제로 경기도와 경기도문화의전당은 지난 6월 ‘천지진동-아리랑 아라리요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전 국민적 열망이 반영됐다는 평이다.
도문화의전당은 지난 6월 아리랑을 주제로 1천200명의 풍물단, 1천명의 연합합창단, 200여명의 군악대, 도립국악단, 경기도립무용단, 4만5천명의 관객이 참여하는 축제를 열었다.
누구나 ‘아리랑지킴이’로 등록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한편, 각계 각층 인사가 전하는 아리랑과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상영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총 336억원의 예산을 들여 무형문화재 아리랑 전승 활성화 방안을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주요 방안은 △아리랑 국가무형 문화유산 지정 △국립무형유산원(2013년 9월 개관 예정) 내 아리랑 아카이브 구축 △아리랑 관련 전시 및 정기공연 마련 △아리랑 학술조사 및 연구 지원 △지방자치단체 아리랑 축제 지원 △국외 주재 교육원을 활용한 아리랑의 보급 선양 등이다.
이번 아리랑 등재는 중국이 지난해 5월 ‘조선족 아리랑’을 국가급 무형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급하게 추진됐다.
남북 공동으로 등재를 추진하다가 제동이 걸렸다가 우리의 것을 눈 뜨고 빼앗길 상황에 처하자 적극적으로 달려든 것이다.
등재 확정이나 우리 문화를 지킨 일 모두 기쁘지만, 2013년에는 좀 더 주체적으로 우리 문화를 지킬 머리와 힘이 요구된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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