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트남 수교 20돌…본보, 수기공모 최우수상 레티탄두엔씨
레티탄두엔씨는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민여성이다. 우리나라 남성농업인 3명 중 1명은 국제결혼을 했고 2020년이 되면 19세미만 농가인구의 절반이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만큼 다문화가정은 어느 새 우리 사회 구성원의 중요한 한 축이 됐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들을 배타적으로 대하거나 우리 문화를 강요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이제는 ‘다문화’라는 말처럼 각자의 문화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공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일환으로 경기일보는 2012년 한국-베트남 양국 간 수교 20주년을 맞아 주한 베트남 이주가정의 수기를 공모했다. 우수작으로 선정된 수상자들은 늦었지만 소원하던 결혼식을 올렸고 고국방문 왕복항공권도 받았다.
레티탄두엔씨는 뒤늦게 학교를 다니며 겪은 일화와 농사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 최고상인 최우수상을 차지하며 친정식구들과의 상봉 기회를 거머쥐었다.
5시간 비행 끝에 호치민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도로를 꽉 메운 오토바이 행렬이 베트남에 왔음을 실감케 했다. 두 아이들은 ‘엄마 나라’가 신기한지 눈이 휘둥그래진 채 바깥 풍경을 구경하며 차창에서 코를 떼지 못 했다.
레티탄두엔의 친정은 호치민시에서 차로 3시간 넘게 걸리는 롱안이라는 곳이다. 흙먼지 날리는 시골길을 달려 차가 멈춘 곳은 메콩강의 한 지류. 이 곳을 건너야만 레티탄두엔의 집이 나온다. 어느 새 해가 저물어 어둑해진 가운데 레티탄두엔의 오빠가 부서져가는 쪽배의 노를 저으며 마중을 나왔다. 오빠를 보자마자 “조심해!”라고 말한 그는 “우리 오빤데 한국말로 말해버렸다”며 겸연쩍게 웃는다.
배를 타고 수심 10m 폭 30m의 작은 강을 건너자 열여덜살된 여동생이 먼저 달려나와 반긴다. 언니를 보자 눈물이 글썽해진 여동생의 얼굴을 레티탄두엔이 가만히 어루만졌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두 팔을 벌리며 “왜 이렇게 늦었어, 걱정했잖아”라며 레티탄두엔을 끌어안았다.
이어 사돈 간의 첫 만남. 시아버지 김기갑씨는 “딸을 잘 키워줘서 정말 감사하다. 덕분에 가정이 평안하다”면서 “모든 일을 잘 하니 걱정하지 마시라. 내 마음에 쏙 든다”며 며느리를 추켜세웠다.
그 말을 전해들은 부모는 안심이 된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레티탄두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레티탄두엔은 열 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시집왔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사람이 너무 멋있어 보였고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결혼까지 결심했단다.
한국에서 베트남 신부들이 맞고 사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던 부모님은 그를 말렸다. 레티탄두엔은 “싸우지 않는 부부가 어딨냐, 그리고 멀리 있든 가까이에 있든 잘만 살면 된다”며 당차게 부모를 설득했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오니 현실은 드라마 같지만은 않았다. 어려운 집안 살림 때문에 초등학교를 2년밖에 다니지 못하고 농사를 지으며 유년기를 보냈는데, 한국에 와서도 여전히 농사를 지어야 했다.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5남매 중 장남과 결혼해 1년에 제사를 다섯 번 지내는 맏며느리 역할까지 맡았다.
남편과는 문화차이는 물론이고 세대차이까지 느끼며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그런 한국생활에 전환점이 된 것은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 낮에는 농사를 지으며 아이들을 키우고 밤에는 책을 붙들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여기에 교재를 사주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열심히 가르쳐주는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더해져 레티탄두엔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모두 검정고시로 졸업할 수 있었다.
레티탄두엔은 현재는 홍성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가난 때문에 공부를 포기했던 딸이 이제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부모는 감격스러워했다.
어머니 팜티김로안(44)은 “멀리 사니까 어떻게 지내는지 늘 궁금했는데 아이들도 잘 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며 “딸이 학교도 다니고 행복하게 살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 이대로만 산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레티탄두엔 가족의 방문으로 친정집은 손님맞이에 활기를 띠었다. 부엌에서는 음식 준비가 한창이고 레티탄두엔의 외가와 친가, 사돈댁 식구들까지 모두 모여 북적였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화장실도 없는 낡은 집이지만 풍요로운 분위기가 넘쳐흘렀다.
친척들은 레티탄두엔의 아들 융성이를 둘러싸고 ‘바 응오아이(외할머니)’, ‘옹 응오아이(외할아버지)’ 등 베트남어 가르치기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융성이가 베트남어를 한 마디씩 따라할 때마다 모두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이번엔 반대로 한국말을 가르쳐 줄 시간. 레티탄두엔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를 또박또박 발음하자 이들은 더듬거리며 따라하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음이 터진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더니 베트남에도 손님이 오면 닭을 삶아 내 오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온 가족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삶은 닭고기를 나눠먹으며 밤이 깊어갔다.
남편 김형훈씨는 “베트남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한다는 걸 여기 와서 알았다”며 “아내가 말도 안 통하는 한국에서 대화도 못 하고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겠구나 새삼 느꼈다”고 했다. “앞으로 처가에도 신경을 더 많이 쓰고 아내에게 더 잘해줄 것”이라는 그의 얼굴에 쑥스러움이 가득했다.
레티탄두엔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정말 행복하다”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줘 감사드린다”며 환하게 웃었다.
낯선 나라에 시집와 살림과 육아, 농사일까지 도맡아 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도전하고, 또 야무지게 그 꿈을 이뤄내는 레티탄두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레티탄두엔은 새해에는 공무원 시험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복지 분야나 보건소에서 일하는 게 꿈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고향집에서 연말을 함께 보내며 행복을 충전했으니 그의 새해 소망도 행복한 기운을 얻어 꼭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구예리기자 yell@kyeonggi.com
사진 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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