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령, 기자, 그리고 군수 가난한 고향에 복지·발전 ‘새바람’
결국 그날 소년은 서울 신촌에서 강화까지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이후 소년은 어떻게 됐을까?
이야기의 주인공은 순무, 인삼, 쌀, 약쑥, 노랑고구마, 새우젓의 고장, 강화군의 수장 유천호(62) 군수다. 강화 초ㆍ중ㆍ고등학교를 졸업한 유 군수는 학창시절, 친구들 연애편지 대필을 도맡았던 재주꾼이었다. 문장력이 좋아 시를 쓰던 소년은 먼 훗날 기자가 됐다.
화려한 기자시절을 마감하고 그는 2012년 봄, 강화군수가 됐다. 뼛속까지 강화 남자인 유천호 군수의 오감은 24시간 강화군을 향해 있다. 지난 12월 10일 유 군수를 만났다. 꾸밈 없는 성격의 유 군수는 취임 이후 겪었던 변화와 군정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대방출했다.
뼛속까지 강화人…열악한 강화도를 키우다
유천호 군수는 2남3녀의 막내로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엔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어 밴드부 생활을 하기도 했다. 감성적이었던 청년 유천호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군 제대 후 1988년 경기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는 인생의 정점에 서게 됐다.
“경기일보에 입사한 계기가 아주 재미있습니다.(하하)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빠 직업란을 기재해야 한다고 해서 기자가 됐습니다. 아마도 부끄럽지 않은 아빠, 당당한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강한 신념이 잠재돼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화려한 기자생활을 했다. 전두환 대통령 측근의 비리를 보도해 특종상과 함께 특진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기자생활하면서 나름 신조가 있었습니다. 암세포를 잘라내면 피가 나고 상처가 생기지만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 암세포가 온 몸에 퍼져 생명을 잃듯이 진실 또한 나 한 사람의 고통이나 어려움 때문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자식들에게 존경받고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으로 일했습니다. 그랬더니 연이은 특종이 따라오고 승진도 빨랐습니다. 개인적으로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1999년 신문사 상무이사를 끝으로 그는 언론계를 떠났다.
이후 22, 23, 24대 강화군 재향군인회 회장, 제7~8대 인천광역시 생활체육회 회장, 인천광역시 재향군인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왕성한 지역 활동에 매진했다. 그러던 중 2006년 인천광역시의회 제5대 의원으로 당선돼 부의장까지 지냈다.
그의 정치인생은 2012년 봄날, 본 게임에 돌입하게 된다. 안덕수 전 강화군수의 국회의원 출마로 지난해 4월 11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것이다.
“정치인이 되겠다 뭐 이런 구체적인 계획이나 욕심은 없었습니다. 그저 누구보다 강화를 잘 알고, 누구보다 강화군민을 어루만질 수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하신 군민들의 선택을 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치열하게 일했습니다. 다소 침체돼 있던 강화가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강화군에서 7만 강화군민들 모두를 위해 주인공이 아닌 배경으로 존재하고 때론 그들을 대신해 변화의 선두에서 세찬 비바람을 맞아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전국 최초 ‘미등기 건축물 양성화 사업’ 추진
유 군수의 취임 후 강화군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강화군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그럼에도 수도권 내에서 유일한 낙후지역이다.
대부분의 강화군이 군사시설 보호구역, 천연기념물 보호지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개발에 한계가 있어 전국 최하위권인 13.2%에 불과한 재정자립도를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IMF 시절보다 더 살기 어려워진 경기 침체와 소비의 불균형 문제는 유 군수의 가장 큰 현안이자 숙제.
유 군수는 취임 이후 ‘살기 좋은 강화, 함께 하는 강화’를 군정 목표로 정하고 7대 주요 업무계획 추진과 군민과 약속한 54개 공약사항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고 있다.
그 중 유 군수가 취임 후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재산권 소유 불가 미등재 건축물의 양성화 사업’이었다. 이를 위해 전국 최초로 TF팀을 구성해 2012년 9월부터 7천400여 건의 미등재 건축물을 대상으로 양성화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결정은 군민의 고충을 직접 해결하기 위한 방침으로 공무원이 발 벗고 나서 각종 민원서류를 대행하고 있어 2012~2015년 3년간 15억 원 이상의 비용절감 효과가 예상됩니다.
군민이 직접 추진할 경우 건당 3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게 돼 오랜 고충이 해결되고 동시에 재산권 행사도 할 수 있게 될 전망입니다. 이는 과거 행정에서 탈피한 혁신으로 강화군 행정 발전사에 남을 획기적인 사례가 틀림없을 겁니다.”
이처럼 유 군수는 군민을 위한 일이라면, 무조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지역 맞춤형 조례 제정으로 군민과 군을 살리다
이와 함께 유 군수는 우리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어르신들을 위한 실질적인 복지증진을 위해 노인복지 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2013년 1월부터 경로당 시설비 및 냉난방비 지원 외에 읍·면 노인회 관계자 활동비로 분회장 월 6만원, 경로당 회장 월 3만원을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리고 인천시 군·구 최초로 효행장려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매년 효의 달과 효의 날을 지정·운영하도록 했으며 강화군에 3대 이상 1년 이상 주민등록을 두고 함께 실거주하면 노부모님을 부양하는 세대에 2013년 1월부터 매월 5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또 군민의 쾌적한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가축분뇨의 관리 및 사육제한에 관한 조례도 제정했다.
2012년 10월부터 민가 등 건물 부지 경계로부터 직선거리 300미터 이내, 마을 상수도 및 소규모 급수시설이 설치돼 있는 지점에서 직선거리 500미터 이내, 문화재 및 관광진흥법에 따라 지정된 관광지의 부지경계로부터 직선거리 300미터 이내 법정도로(군도 이상) 및 지방하천에서 100미터 이내에 대해서 각각 가축사육시설 제한구역으로 설정해 환경오염을 방지하고 군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더불어 군내 생산 건설자재 구매율을 100% 사용하도록 전국 최초로 조례를 제정해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강화지역의 건설·제조업체·인력을 참여토록 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제도를 마련했다.
이 같이 강화군 지역 정서와 실정을 반영한 네 가지 맞춤형 조례만 살펴보더라도 유 군수가 그동안 얼마나 발로 뛰면서 일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군사시설보호법, 문화재보호법,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각종 규제로 발목이 묶인 강화도. 그 강화도에 ‘결단력의 사나이’ 유천호 군수가 있다. 뼛속까지 강화사람인 유 군수는 모든 일거수일투족 또한 강화를 위함이다.
그는 꿈꾼다. 오직 6만7천여 강화군민을 위한 ‘길’을 내겠다고 말이다.
“하얀 눈밭에서 가장 먼저 길을 만드는 사람, 내가 디딘 발자국이 길의 시작이 되고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을 배려해 가시덤불을 치워주고, 위험한 돌도 치워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때론 옷이 찢겨지고 발이 꽁꽁 얼지라도 착한 강화사람들과 어울려 내 고향을 지키고 내 고향을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고 싶습니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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