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오지를 가다] 1. 빈곤의 땅에 교육의 열정을 심다

 

“이번엔 아프리카다.”

키보드를 조심스레 쳐본다. ‘아프리카 가나’.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의 표정은 걱정부터 앞서는 모습이다.

“위험하진 않아? 말라리아 그리고 풍토병으로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얘기 들었어...당신은 오지 전문 기자야?”

그렇다. 2008년 경기산악연맹과 본보 20주년 창간특집으로 100일간 에베레스트와 로체 원정에 나선지 정확히 5년만에 신비의 땅 검은 대륙 아프리카로 향하게 됐다.

히말라야 원정이 육체적 도전을 위한 것이였다면, 이번 아프리카 모니터링은 어찌보면 나 자신과 아프리카 미래인 아이들을 위한 ‘힐링캠프’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만 갔다.

그리고 1월19일. 11명의 최정예(?) 월드비전 가나 모니터링단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상상하며 두바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9시간의 비행 그리고 짧은 휴식 후 우리는 다시 가나 아크라행 비행기를 탔다.

장장 20여시간만에 도착한 가나의 수도 아크라.

사람도, 길도, 건물도 낯선 그곳에서 현대·기아차 등 중고차와 간간히 눈에 띄는 ‘△△화물’, ‘□□우유’, ‘○○건설’ 등의 한글 문구가 무척이나 신기하면서도 반갑게 다가왔다.

지구의 3분의 1을 돌아온 머나먼 이국땅에서 생각지도 못한 특별한 만남이랄까...

호텔에 도착한 뒤 월드비전 가나 직원들 및 월드비전 미국 후원자들과 저녁을 먹으며 가나에서의 그동안의 활동 상황, 앞으로 진행될 사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피부색과 언어는 다르지만 세상의 미래를 지키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가슴속으로 전해졌다.

다음날 이른 아침 월드비전 사업장으로 떠나기 위해 버스에 짐을 싣고, 체크아웃하려는데 아프리카인 한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어디로 가냐고 물어 크라치웨스트로 간다고 하니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원더풀”을 외쳐댔다.

대한민국은 가나에서 미국(사업장 13곳) 다음으로 많은 6곳의 사업장에서 지역개발사업(ADP, Area Development Program)을 진행하고 있어, 가나 사람들에게는 이미 고마움의 대상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월드비전은 후원 어린이 개개인에게 1대1 물품지원을 하는 대신 지역개발사업을 통해 마을 전체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후원자들이 보낸 후원금으로 아동과 그 가족들을 위한 식수펌프가 만들어지고 학교와 보건소가 건축되며 교사가 초빙되고 보다 풍족한 마을을 위한 각종 소득증대사업이 펼쳐진다.

후원금을 직접 전달한다면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기 힘들뿐더러 한 마을 안에 후원을 받는 집과 못 받는 집간의 갈등, 노력해 변화하려는 의지가 부족해지는 등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있다.

그런 면에서 지역개발사업은 마을주민 모두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가면서 빈곤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와난도에 울려 퍼진 ‘아리랑’

장시간의 비행으로 여독이 풀리지도 않았는데 다시 비포장도로를 8시간 달려 크라치이스트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볼타호수를 40여분간 건넌 뒤 또다시 버스로 3시간을 이동하자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인 크라치웨스트에 다다랐다.

아프리카에서 진행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카르 랠리’를 방불케하는 험난한 여정이어서 그런지 이곳 사업장에 도착한 감회는 이루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었다.

특히 비포장도로 양옆으로 이어지는 전통가옥과 자신들과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이 마냥 신기한 듯 달려나와 손을 흔드는 가나 사람들 덕에 고된 피곤함을 잊을 수 있었다.

크라치웨스트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월드비전을 통해 지원받아 만들어진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한 손으로는 커다란 대야를 머리에 이고 다른 한 손으로는 깡통을 쥐고 무릎을 굽혀가며 물을 길어 대야에 붓는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크라치웨스트에 도착한 이튿날 월드비전의 후원으로 지어진 와난도 중학교 및 유치원 준공식에 참석했다.

우리와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민속춤을 추며 환영해주는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아이들을 대표해 또박또박 영어로 고마움을 전하는 남녀 아이들의 모습에서 아프리카의 희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한국 선생님과의 수업.

병점중학교 오현정 교사의 한국 문화 알리기 수업은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태극기 그리기에 이어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에서는 피부색과 언어, 그들이 처한 상황을 떠나 우리 모두가 ‘지구마을 한가족’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가나 아이들이 부르는 단체 아리랑은 이날 준공식에 그야말로 백미였다.

수업을 함께 한 10살 소년 마이클은 “월드비전에서 지어준 학교에서 한국 선생님과 수업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앞으로 이곳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꼭 의사선생님이 되겠다. 그리고 나도 그때는 꼭 어려운 사람을 도울 것”이라고 해맑게 웃었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오현정 교사는 “아이들이 너무 수업을 잘 따라와줘 고맙다”며 “이 아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해서 가나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월드비전 가나 ADP 매니저인 프란시스 멘사는 “내년에는 이곳 와난도에 초등학교가 새로 지어지고 월드비전에서 지원하는 도서관이 완공되면 아이들의 학습 환경이 더욱 좋아질 것”이라며 “특히 학습 환경 조성과 더불어 화장실 공사가 시작되면 보건 분야도 어느 정도는 나아질 것으로 생각된다”고 와난도의 청사진을 설명했다.

■앙카아세-마타마람에서 피어날 가나의 미래

크라치웨스트에서 맞이한 셋째날. 아침 일찍 앙카아세-마타마람지역의 초등학교로 향했다.

이곳에는 현재 건물 한동만 덩그러니 놓인 채 수십명의 아이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히 모여 영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월드비전 마크를 알아본 아이들은 맑은 웃음을 지으며 환호했고, 학부모들은 전통 춤을 추며 다소 격하게(?) 환영해줬다.

이어진 기공식에서 앙카아세-마타마람 교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월드비전의 지원으로 건물과 선생님들이 숙소가 내년 이맘때에는 완공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멀리까지 간 중학생 아이들도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공부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선생님들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어 무척 흥분된다”고 감격해했다.

노선덕 경기도교육청 장학관은 “경기도교육청과 경기지역 아이들의 후원으로 아프리카에서도 생활이 어려운 앙카아세-마타마람지역에 교육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돼 행복하다”면서 “앞으로도 지속적인 후원을 통해 앙카아세-마타마람지역의 아이들이 가나의 미래로 성장해달라”고 당부했다.

크라치웨스트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이곳 아이들 모두에게 밝고 건강한 미래가 펼쳐지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김규태기자 kkt@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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