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FC 안양이 1등 하는 세상이 아름답다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기자페이지

주장은 슈퍼마켓 사장이다. 공격은 까르푸 직원이 맡았다. 차라리 조기 축구팀에 가까웠다. 이런 선수들이 승수를 쌓아 갔다. 1부 리그 명문 구단 등 10팀이 줄줄이 제물이 됐다. 결승에선 졌지만 이미 그들에겐 ‘칼레의 기적’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었다. 원정 응원에 나섰던 4만명은 전 지역 주민의 절반이었다. ‘르 몽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축구의 수호자들’이라고 적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칼레가 정신에서 우승했다”고 칭찬했다.

1등이 1등하면 재미 없다. 꼴등이 1등해야 재미있다. 12년 전, 프랑스 북부의 작은 항구 도시 칼레(Calais)가 세계 축구사에 기록된 것도 그래서다.

2012년은 경기도민과 수원시민이 모처럼 스포츠로 하나 된 해였다.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라는 공통의 목표가 모두를 하나로 묶어냈다. 그런데 그 엄청난 격동의 물결 뒤편으로 우리가 챙겨주지 못한 또 하나의 열정이 있었다. 안양시민들의 FC 안양 만들기다. KT처럼 ‘200억 배팅’을 써낼 모기업도 없었다. 경기도처럼 ‘맏형’ 노릇을 할 후원자도 없었다. 그저 내 고장 축구팀을 갖고 싶다는 시민들의 정성만 있었다. 그렇게 외롭게 달려서 이제 창단이다.

2004년 恨, 시민 힘으로 극복

안양 시민에게 축구는 특별한 한(恨)으로 남아 있다. 2004년 2월2일, 안양 시민의 자랑이던 LG 구단이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을 발표했다. 느닷없는 소식에 축구팬은 물론 안양 시민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안양에 남아 달라’는 호소도 있었고 ‘LG 제품 안 사겠다’는 으름장도 있었다. 하지만 돈 되는 서울로 떠나겠다는 대기업의 경영 진단을 바꾸진 못했다. 이후 9년, 안양은 축구 불모지였다. 수원 삼성이 세계적 구단으로 커가는 걸 그저 지켜만 봐야 했다.

그 쓰라린 경험이 이번 창단과정에도 그대로 녹아들었다. 기존 구단을 인수할 경우 이런저런 혜택으로 35억원의 돈이 절약된다. 최대호 시장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양시는 신생 구단 창단을 택했다. 영원히 떠나지 않을 시민의 팀을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안양시에서 15억, 국민은행에서 10억원을 모아 매년 운영해야 한다. 이 역시 안양시민만의 팀을 지키내려는 고집이다. 안양시민을 9년째 덮고 있는 LG 이탈의 트라우마가 그만큼 깊다.

FC 안양의 창단일이 하필 2월2일이다. 9년 전 그 날과 소름끼치게 겹쳤다. 다만 그땐 1부 리그였으나 지금은 2부 리그다. 축복이라면 올해부터 바뀐 프로축구 운영방식이다. 1, 2부 리그 간에 승강제가 시작된다. 1부 리그 하위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고, 2부 리그 상위팀이 1부 리그로 승격되는 방식이다. 꼴찌로 시작하는 FC 안양에는 기회의 땅이다. 우리가 타전해야 할 FC 안양의 첫번째 기적도 ‘신생 구단 FC 안양, 1부 리그 전격 진입’일 것이다.

‘기대’라는 놈의 반대편에는 늘 ‘부담’이란 놈이 자리를 튼다고 했던가. 오근영 초대 단장이 근심보따리를 잔뜩 풀어놓고 갔다. “시민의 기대가 엄청난데…”, “구단 경영에도 기여해야 할 텐데…”, “명문 구단이 1~2년 새 만들어지는 건 아닌데…”.

99%에 희망 주는 ‘기적’ 기대

축구 경영인다운 옳은 진단이다. 힘들 날들이 FC안양을 기다리고 있다. 먼지 나는 공설운동장을 뛰며 더 없는 외로움을 견뎌야 할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텅 빈 관중석을 향해 대답 없는 골 세러모니를 해야 할 날도 기다리고 있다. 자본과 전통 앞에 꼴등임을 인정해야 할 날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날들이 있어 FC 안양의 기적도 대기중인 것이다. 칼레가 돈 많은 도시였다면 기적이라 불렸겠는가. 몸값 비싼 선수들로 그득했다면 기적이라 불렸겠는가.

꼴등이 1등 되는 세상을 보고 싶다. FC 안양이 1등 하는 세상을 보고 싶다. 99%의 꼴등들이 살아야 할 희망을 FC 안양이 만들어 가는 걸 보고싶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FC 안양이 1등 하는 세상이 아름답다]

김종구 논설실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