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에서 놀자]<29>구리문화원 ‘건원취타대’

“명금일하 대취타(鳴金一下 大吹打)”

등채가 머리 위로 올라가고 집사의 호령으로 웅장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대기실에서의 화기애애하고 귀엽던 아줌마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약간은 긴장된 표정과 함께 전립(戰笠)을 쓰고, 황 철릭을 입고, 남전대(藍纏帶)를 두르고, 미투리를 신은 모습은 근엄하기까지 하다. 2009년 인연을 맺은 취타대에 푹 빠져 배움에 여념이 없는 이들은 구리문화원(원장 김문경)의 자랑거리 ‘건원취타대’다.

■ 하늘로부터 탄생한 취타대

구리시에는 남한 최대의 조선왕조 능인 동구릉과 아차산 고구려 보루, 유적 유물 등이 있다. 특히 동구릉은 2009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 40기에 등재되었다.

구리문화원은 동구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에게 알리는 한편, 지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축제와 학술제에서 필요하고 중요한 것으로 취타대를 꼽았다. 즉, 이를 유지하고 계승하기 위해 취타대를 구성하게 되었다.

취타대가 연주하는 대취타란 왕의 행차나 군대의 행진 또는 개선 등에 취타와 세악을 대규모로 연주하는 행진곡풍의 군례악(軍禮樂)이며, 중요무형문화재 제 46호이기도 하다. 현재 민간의 광고 악대나 시찰의 의식에 사용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취타에 사용되는 악기는 유일한 선율을 낼 수 있는 태평소와 단음의 취악기 나발과 나각, 그리고 무율 타악기인 북, 장구, 징, 자바라 등이다.

구리문화원이 구성한 ‘건원취타대’는 2009년 ‘하늘아리’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2011년 문화원 자체지원 운영하는 것으로 전환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나이제한은 없지만 평균연령이 50대 후반으로 90%는 여성들로 구성돼 있다.

이쯤에서 ‘건원취타대’라는 이름은 어떤 뜻을 가졌는지가 궁금해진다.

동구릉은 태조 이성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태조의 릉을 건원릉(建元陵)이라고 하다. 이 능의 이름을 따 ‘건원취타대’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2009년 당시 ‘하늘아리’라는 이름 역시 하늘을 상징하는 ‘건’과 아래의 ‘아리’ 또는 한강의 ‘아리수’가 섞인 이름이겠네요?”라는 질문에 윤승민 구리문화원 사무국장은 “아, 그럼요. 구리에 한강도 있잖아요”라며 허허 웃는다.

■프로보다 더 프로다운 사람들

30대 중반의 강사는 단원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인데도 소통뿐 아니라, 단원들을 이끄는 카리스마가 남달라 단원들이 무서워하기도 한다.

아직 완숙미에 다다르지는 않았지만 대원의 교체 없이 맡은 파트를 3년간 해오면서 기량이 월등히 좋아져 외부의 공연의뢰가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취타대의 특성상 한 가지 악기를 전문적으로 맡아야 하는데 악기 배정에 대한 트러블은 없었을까.

이 뜬금없는 질문에 “가벼운 악기를 하고 싶어하는 분도 있었고 가격대가 비싼 악기나 무거운 악기는 부담스러워 하기도 했지만, 남성의 경우 깃대를 들고 체격(?)에 따라 악기를 배정하기도 해서 맡은 악기에 대해 이미 프로가 되어 있는 상태예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공식적으로 주 2회 오후 4시라는 수업시간이 직장인들에게 그리 만만한 시간이 아닐텐데도 출석률은 90% 이상이다.

“취타대는 의장대인거예요. 엄격한 규칙과 규율이 존재하죠. 그 시작이 출석이라고 할 수 있고요. 하지만 엄격함만 가지고는 지금처럼 오지 못했을 겁니다. 현재 70%는 직장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계의 시간을 내어 참여할 만큼 취타대가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치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어 그 열의가 대단하죠. 자부심과 목표가 있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윤 사무국장의 취타대와 대원들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다.

■사람 몸이 내맘대로 되나. 기다리고 보듬어야지!

흔히 접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닌 탓에 배움의 속도가 모두 달라 고생도 했다. 생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제식과 함께 연주까지 해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마음을 모아 잘 해보자고 의기투합하지만, 실력이 하루아침에 향상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연습 때는 더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공연 때마다 무대 뒤에서는 밝은 표정이면서도, 설레고 떨리는 마음을 뒤로 감추는 단원들에게는 항상 비장함이 보인다.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을 잡고 음악에 맞춰 왼발 먼저 움직여요. 단장님의 뒤를 따라 무대로 올라가지만 뒤따라가던 신입 단원은 맨날 엉뚱한 곳으로 간다니까..”

1년차 회원인 윤미경씨는 열심히 공연 준비를 하지만 아무리 말로 지적해도 나이탓인지 안되는 부분이 많아 ‘으악’소리가 절로 나올 때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투정 역시 취타대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섞인 자랑으로 들린다.

이와 관련 장미경 단장은 “단원 모두 잘하면 좋겠지만 늦게 받아들이는 사람에 대해서는 인내를 가져야 한다. 젊음의 유리한 점과 연륜의 지혜로움이 함께 있어 조화를 느끼며, 이 모든 것이 큰 자산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이제 건원취타대는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만큼의 궤도에 올랐다.

공연수익으로 연2회 워크숍도 가고, 신입 단원의 의상이나 악기구입에도 사용할 만큼이라고 하니 즐겁게 일할 맛도 날듯하다.

취타대는 구리시의 행사 뿐 아니라 기신제나, 환구대제, 별산굿 놀이마당 등 다채로운 행사에 초청받고 있다.

외부 공연의뢰를 받을 때마다 개인이 아닌 구리문화원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문화원의 이름을 걸고 초대되는 만큼 열의와 책임감도 느낀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가장 먼저 김문경 원장을 찾아 자랑과 투정을 부린다고 한다. 그 때마다 ‘늘 잘했다. 자랑스럽다. 칭잔 받으며 좋아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아느냐’며 사무국장은 빙긋이 미소를 짓는다.

“문화원에서 참견하지 않아도 스스로 너무도 잘 꾸려가고 있어요. 예산운영에서부터 회의구조까지 모두 자율에 맡겼습니다. 자율성을 부여하니 자율 속에서 문화원에 대한 애착도 더 생기는것 같구요.”

소속감과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다는 것. 문화원의 이름으로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무게감과 그것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관계야말로 오늘의 취타대를 있게 했다. 그들의 관계가 부럽기까지 하다.

건원취타대는 2013년에 세 가지의 계획이 있다.

매년 5명 정도의 신규단원을 양성하고, 기존 단원이 자신의 악기 외에 배우고 싶었던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룰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또 취타대의 활동이 구리의 초등학교에 많이 알려 관심을 갖도록 이끌 방침이다. 장기적으로 취타대를 각 학교의 어린이에게 교육할 수 있도록 교육자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목표다.

단원들은 말한다.

“나의 예술적 혼을 깨워주는 아주 귀한 활동이기에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잘 갈고 닦아서 동구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에게 알리고 소통하고 싶어요. 또 이곳에서 단원들의 각각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을지 모른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배우고, 기다려주고, 다독이고, 소통하는 동안 그들에게 이곳은 삶의 의미가 되어 있는 듯하다.

글_유쾌한 책상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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