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스케치여행] 중림동 쪽방촌

중림동엔 명동성당보다 앞선, 우리나라에서 가장오래 된 고딕식 건물 약현성당이 있다. 언덕 위의 이 성당은 1998년 방화로 일부 소실되어 복원하였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고색창연한 모습은 간데없고 너무나 반듯하다. 염천교 건너 다시지은 남대문을 보니 더욱 씁쓸하다.

차라리 성당과 이웃한 쪽방촌 골목이 향수적이다. 설날 오후의 쪽방촌은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황량했지만 중학생쯤 돼 보이는 소녀가 선물인 듯한 물건을 든 채 미끄러운 언덕을 바삐 올랐다. 골목을 들어서자 나지막한 낡은 대문 앞에 설 인사 온 친척이 호출을 한다.

문을 열자 바글바글 모여 있던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소리치며 달려 나온다. 이런 정회(情懷)는 아파트의 정서와 비견할 수 없는 미학적 풍경이다. 연탄재 뿌려진 골목을 나서며 나는 그들의 방안 모습이 그리웠다. 무척이나 따뜻할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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