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주인공 북파공작원 ‘인권유린’ 진실로
前 공작원, 훈련중 땅에 묻고 반복되는 구타로 정신분열증
수원지법 “군복무 과정서 인과관계 있다” 국가유공자 인정
영화 ‘실미도’에 나왔던 북파특수임무요원(HID요원)들이 실제 훈련을 받다가 정신이상이나 사망 등의 비극적인 운명을 맞기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지법 행정2단독 왕정옥 판사는 군복무 중 훈련 여파로 정신분열증을 앓게 됐는데도 ‘공무수행중 상이’ 인정을 받지 못한 전 북파공작원 K씨(36)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국가유공자요건비해당결정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판결했다.
왕 판사는 판결문에서 “입대 전까지 증세가 없었고 가족 중 병력을 가진 사람이 없는 점, 견디기 힘들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을 만한 사건을 겪은 점 등에 비춰보면 원고의 정신질환은 군복무 과정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1997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K씨는 모병관으로부터 50개월 근무를 마치면 1억원 이상 돈을 주고 제대하면 국가기관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그해 4월 북파돼 요인 납치, 암살, 첩보수집 등을 주임무로 하는 특수임무요원으로 입대했다.
입대 한달 뒤 K씨는 훈련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교관이 던진 대형 해머를 피했다가 옆에 있던 동료가 대신 맞고 쓰러지는 것을 본 뒤부터 공포감과 자책감을 느꼈다.
100일 훈련 뒤 부대에 배치된 K씨는 휴전선 침투 훈련, 공수강하훈련, 투검, 해상수영 12㎞ 등의 전문 훈련을 받았지만, 기강확립이라는 명목하에 야구방망이와 축구화 끝부분을 이용한 구타도 날마다 이어졌다.
이후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게 한 뒤 모르스부호 송수신이 틀릴 때마다 물을 채워넣기도 했고, 한겨울에는 수시로 부대 앞 계곡 얼음물에 밀어넣고 3시간 동안 버티게 하는 등의 정신적ㆍ육체적 고통은 더해갔다.
지난 1998년 5월께 훈련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같은 방을 쓰던 K씨 후배를 투검훈련용 표적 옆 나무에 묶어두거나 목만 내놓고 땅에 파묻은 채 1주일을 내버려두고 욕조에서 물고문을 반복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적응을 못하던 K씨 후배는 결국 군 복무중 사망했다.
K씨는 50개월의 군생활을 하면서 점점 불안, 초조해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선배나 동료들이 묻는 말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며 점차 멍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K씨는 제대후에도 이상증세를 조금씩 보이다가 전역 3년후인 지난 2003년께부터 정신분열증 증세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 아직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명관기자 mk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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