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시에는 한성(위례성)백제시대 위례성의 진산(鎭山)으로 당시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이 곳에 은거했다 해서 불리게 된 검단산(657m)이 있다. 이 산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재앙과 질병을 막기 위해 해마다 올리는 산신제가 음력 10월1일 자시(子時)에 봉행한다.
300여년을 이어져 온 이 산신제는 올 해는 검단산 할아버지께, 내년에는 검단산 할머니께 제를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제의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간단하게 음복(飮福)하는 것으로 제의행사는 끝이 나고 다음날 마을회관에서 마을 주민이 모여 제물로 쓰인 음식, 그리고 음식장만을 더 만들어 다 함께 음복하며 마을의 안과태평무사(安過太平無事)함을 기원하는 덕담들을 주고 받으면 검단산신제는 마무리 된다.
마을 일체감 조성 향토문화
또 우리 고장에는 양곡 단오제와 샘재 군웅제, 미사리 성황제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샘재 군웅제는 매년 정 월 초사흘에 하고 산신제는 음력 10월1일에 지내고 있다. 샘재 군웅제 소나무는 중부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소실되었지만 소나무의 자손이 샘재 고속도로 방음벽에 번성하고 있어 마을 주민들은 때가 되면 그 곳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게다가 양곡단오제는 단오날, 600여년 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마을 주민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고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목신제(木神祭) ’를 지내는 마을도 있다. 법동마을의 목신은 마을신으로 농심(農心)이 머문다는 당산(堂山)나무 즉, 홰나무를 신목으로 하고 있다. 홰나무는 단군신화(檀君神話)에도 나오는 신목(신단수ㆍ神壇樹)으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사다리 역할을 했던 신령한 나무다.
법동마을에서는 언제부터인가 500년 이상 된 홰나무 앞에 시루떡을 가져다 놓고 치성을 드리는 제의가 행해져 왔으며 이 제의는 법동마을 아낙네들이 홰나무에 동제(洞祭)를 지내면서부터 시작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제사의 동기는 마을의 젊은이들이 일찍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하며 홰나무는 둘레가 5m 정도 되고 3개의 줄기가 힘차게 하늘로 향한 노목(老木)으로 죽은 가지 하나 없이 아직도 건강하다.
마을 주민들은 음력 10월1일 왼새끼를 꼬아서 나무에 동여매고 창호지를 넓이 5㎝, 길이 30㎝ 정도로 잘라서 꽂으며 나무 주위를 깨끗하게 잘 정돈하고 마을 공동으로 제물을 준비해서 목신제를 지내왔다. 이러한 민속축제의 기원은 고대 부족국가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여의 정월 축제인 영고(迎鼓), 10월 상달에 열렸던 고구려의 동맹(東盟)과 예의 무천(舞天), 그리고 마한의 씨뿌리기를 마친 뒤의 5월 축제가 그것이다. 신라시대에는 궁궐 내의 계림에서 김씨왕가의 조령(祖靈)에 대한 제의와 농경국가로서의 풍요와 국태민안을 비는 의식이 정월에 거행됐다.
신라 때의 명절과 세시풍속이 오늘날과 유사하다해도 과언은 아닌 듯 싶다. 이렇듯 모든 제의는 마을과 개인의 소원을 기원하는 것이고 제를 올리고 나서 마을잔치를 벌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후손에 물려줄 ‘찬란한 유산’
더욱이 어느 고장이나 향토문화제는 모름지기 역사적 신화의 뿌리에 근거를 두고 원초적 제의성(祭儀性)에다 마을 주민의 일체감을 조성해 주고 있다. 이러한 향토문화(민속)가 누구의 관심조차 없다면 어쩌면 한세대가 가기 전에 잃어버리고 말 것이며 무엇보다도 지금 필요한 것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도록 기록하고 보전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된다고 본다.
개화기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헌신했던 헐버트는 “한국인들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고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지만 고난을 당할 때에는 영혼숭배자다” 라는 말의 새삼 떠오른다.
이 교 범 하남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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