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이태호의 ‘그날-911Ⅰ’

지난주는 연일 악천후였다. 영동지역에 눈보라가 휘몰아쳤고 중부지역은 강풍이 세찼다. 봄의 들머리가 겨울꼬리에 새파랗게 질렸다. 4월의 한국 현대사가 몸살을 앓는 듯 전국이 갑작스런 한파로 들끓었다. 그런데 사실 그런 한파에도 불구하고 진짜 악천후는 북한의 전쟁위협일 것이다.

그들의 위협은 지금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구체적이어서 우리 사회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그들이나 우리나 전쟁의 발발이 가져올 민족의 파국을 모르는 바 아닐 터이다. 이제 전쟁은 20세기와 달라서 전면적인 전쟁의 결과는 삶의 완전한 초토화를 야기한다.

2004년 이태호는 전쟁과 테러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한다. 그는 날마다 신문에 실려 집으로 배달되는 전쟁과 죽음의 이미지들이 참혹했다. 자발적 유배지의 외딴 곳까지 엄습하는 불길한 징후의 그림자들이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리하여 그는 신문에 실린 그 증거들을 모아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날-911Ⅰ’도 그 중 하나다.

검은 먹과 목탄으로 그린 뒤 붉은 파스텔로 태점을 찍어 놓은 ‘그날-9.11Ⅰ’은 테러 현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밖으로 걸어 나오는 시민들의 모습이다. 작가는 인물들의 표정을 지우고 거기에 숲을 그려 넣었다. 일명 ‘도피하는 숲 사람들’인 셈이다. 이러한 모습은 시리즈 전체에서 발견된다. 왜 그랬을까?

이때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작가의 시선이다. 그의 연작 작품 전체를 훑어보면, 테러니 전쟁이니 하는 것에 별반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는 반전이나 비폭력을 위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물론 결과적으로는 그 상징에 이르겠지만), 삶의 총체적 풍경으로서의 인간을 집요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어쩌면 근원에의 성찰일지 모른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 그리고 왜 우리는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생각들.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저 테러의 현장들을 뉴스를 통해 확인하며 산다. 그리고 북한의 위협은 저 현장이 어쩌면 내 삶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있다. 정전 60주년인 올해 우리는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통일시대로 가기 위한 ‘평화의 실천’을 더 적극적으로 궁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기획팀 뮤지엄운영파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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