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개성공단… 입주기업 망연자실
완제품 갖고 오지도 못해
계약파기ㆍ자금난 대책 없어
사태 더 악화… 분위기 침통
“개성공단 내 모든 공장이 멈췄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악화할 줄은 몰랐어요. 참담한 심정입니다”
개성공단 통행 중단 7일째인 9일 낮 12시10분께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만난 화학업체 직원 S씨(35)는 어두운 표정으로 이 같이 말했다. 오전 11시50분 이날 처음으로 입경한 그는 CIQ 주차장에서 승용차에 싣고 온 짐을 정리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S씨의 업체는 전날 밤부터 공장 가동을 중지했다.
밤 8시30분부터 일해야 할 야간 근무조에 이어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야 하는 주간 근무조까지 북측 근로자 550명 전원이 결근했기 때문이다.
보유 자재로 10일까지 버텨보려 했지만 인력공급이 전혀 되지 않으면서 파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공장 가동 중단으로 업체가 추산하는 하루 피해액은 2억원 안팎.
내수 및 수출물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 입게 된 신뢰도 하락은 값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다.
S씨는 “개성공단 내 모든 업체가 ‘올스톱’하면서 모두 도산 위기에 직면했다”며 “그간 위기 때마다 순조롭게 해결돼 설마설마 했던 업계 관계자들이 하룻밤 새 사태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할 말을 잃은 침통한 분위기”라고 개성공단 내 상황을 전했다.
오후 2시 입경한 의류업체 I사 직원 J씨(58)도 “사람이 없어 공단 전체가 썰렁하다”고 현지 상황을 설명했다.
J씨는 승용차에 운동용 바지 1천장을 실으면서 닫히지 않는 트렁크를 끈으로 고정한 채 어렵사리 입경하고도 “갖고 나와야 할 분량의 50분의1 수준밖에 안된다”고 혀를 찼다.
J씨는 지난 6일로 예정됐던 입경일을 늦췄지만 그간 완제품을 한 차례도 실어나르지 못하면서 별 수 없이 이날 남측으로 넘어왔다.
I사는 북측 근로자 600명이 이날부터 출근하지 않아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J씨는 “어차피 기름이 바닥나 오늘부터 공장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현지에 남아있는 직원 3명은 쌀이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고 있는 형편이지만 출경이 안돼 함부로 입경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완제품을 싣고 가기 위해 대기했던 동료직원 J씨(42)는 “5톤 트럭으로 4번 실어날랐어야 할 분량을 갖고오지 못해 2주 이상 납품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며 “이번 주 중 출경이 재개될 것으로 내심 기대했던 업체 관계자들이 망연자실한 상황으로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고 씁쓸하게 내뱉었다.
5만3천여명에 이르는 개성공단 내 북측 근로자가 출근을 하지 않으면서 공단 운영 파행이 현실화함에 따라 입주기업들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2004년 개성공단이 생긴 이래 공단 전체가 조업을 중단한 것은 9년 만에 처음이다.
당장 입주기업마다 거래업체의 납품계약 파기와 자금난 등이 몰아닥칠것으로 우려되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은 이날 오전 중소기업중앙회에 모여 “범 중소기업계 대표단을 구성해 북측에 파견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날 남측 업체 관계자 71명(내국인 69명, 중국인 2명)이 입경하면서 개성공단에는 내국인 406명과 중국인 근로자 2명이 남아있다.
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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