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추위로 농사 다망쳐… 과수농가 ‘냉가슴’
이천 장호원 4월에 ‘영하’ 막 피어난 배꽃 얼어 죽고
복숭아나무도 까맣게 썩어 냉해 재해 수확량 절반 뚝
“지난해는 태풍, 올해는 이상기온에 따른 냉해로 농사를 다 망쳐 속이 타들어 갑니다”
22일 오후 3시께 이천시 장호원읍 송산리의 한 배 농가.
싸늘한 날씨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농장주 이건용씨(61)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피다 만 배꽃을 살펴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기온이 지속되면서 이맘때쯤이면 만개했어야 할 배꽃이 드문드문 핀데다 그나마 핀 꽃마저 냉해로 얼어버린 탓에 열매를 맺지 못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 분홍빛을 띠어야 할 수술은 턱없이 낮은 기온 탓에 새카맣게 변하면서 피어난 배꽃마다 검은 점들이 박혀있는 모습이었다.
6천600여㎡ 규모로 배나무 360여주를 재배하는 이씨의 농장에서는 이제 막 피어난 꽃은 물론 꽃망울마저 상당수 죽어버렸다.
영하 1.1℃ 이하로 내려가면 냉해 피해가 발생하는 가운데 지난 13일 장호원 기온이 영하 2.3℃까지 떨어진데다 이후로도 추운 날씨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 탓에 한창 진행해야 할 인공수정을 전혀 하지 못하면서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태풍으로 평년 수확량의 10분의 1도 채 하지 못했는데 올해는 예상치 못한 냉해 피해로 예상 수확량이 이미 절반으로 줄었다”며 “배 농사를 지은 지 30년짼 데 4월에 이처럼 심한 냉해손해를 입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인근에서 2만여㎡ 규모로 복숭아나무 600여주를 재배하는 최우범씨(60)의 농장도 상황은 마찬가지.
최씨의 농장에서는 시커먼 나무줄기가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 상당수도 쭉정이처럼 속이 텅 빈 채 죽어 있었다.
죽어버린 줄기는 마른 상태로 쩍쩍 갈라졌고 나뭇가지에 맺힌 꽃망울은 분홍빛을 잃은 채 까맣게 오그라붙은 상태였다.
20일이면 펴야 할 꽃이 전혀 피지 않은데다 꽃망울이 맺힌 가지가 통째로 얼어버리면서 최씨는 벌써 며칠째 썩은 가지를 베어내고 있다.
최씨는 “농사를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죽어버린 가지를 쳐내는 심정은 말로 못한다”며 “앞으로 잇따라 닥칠 가뭄, 태풍, 각종 병충해를 생각하면 잠이 안올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복숭아 농가 900여곳과 배 농가 200여곳 등 과수농가만 1천곳이 넘는 장호원 일대는 이달 들어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고 일조량이 줄어드는 이상저온현상으로 피해가 막심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정범석 장호원읍 이장단협의회장은 “자연재해로 인한 농가피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만큼 재해 종류와 정도에 따른 체계적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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