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장 (21)] 소설가 방현석

故 김근태의 치열한 삶을 녹여낸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1980년대 민주화 운동 관통한 세대 잊혀져 가는 그날의 함성을 깨우다

요즘 젊은 연인들에게 100일은 특별한 날이다. 게다가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빼빼로데이 등 최근 몇 년 사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신생해 번져가고 있는 온갖 기념일의 족보를 열거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이다. 젊은이들이 상혼에 찌든 국적 불명의 기념일을 꼬박꼬박 챙기는 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는 것이 있다.

바로 1970~80년대의 봄이다. 18년 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독재자 박정희가 죽고 따뜻한 봄기운과 함께 민주화의 기대가 꽃피던 1980년 봄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은 얼마나 될까. 노동운동가 출신의 방현석(52) 작가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이제 삼국시대 이야기처럼 아득한 이야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방 작가는 지난해 연말,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인물 정치인 故 김근태(1947~2011)의 삶을 다룬 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이야기공작소刊)’를 펴냈다. 지난 4월 17일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에서 방현석 작가를 만나 1980년 봄과 2013년 봄 이야기를 나눴다.

모교 강단에서 후학양성, “긴 줄에 서지 말고 짧은 줄에 서라”

중앙대 문창과 80학번·총학생회장 출신… 학출(學出) 노동운동가

“요즘 중간고사 기간이라 점심 때 학생식당에서 삼계탕을 배식하고 왔습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인 방현석 작가는 학생지원처 처장을 겸직하고 있어 2013년 봄, 중간고사 공부하느라 바쁜 학생들을 위해 보양식을 챙겨주고 있었다. 80학번인 방 작가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1985년 중앙대 총학생회장으로 중대 학생운동의 핵심인물이었다. 그래서 모교에서의 교수생활이 특별할 수밖에 없다.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는 서라벌대학 문예창작과를 모체로 하고 있다. 올해는 문예창작학과가 생긴 지 6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지난 50여 년 동안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의 문창과 출신이 한국 문단을 주름잡아 왔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그 동안 배출한 문인은 단일 학과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죠.”

모교 강단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며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방 작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개설 60주년을 맞이하는 심정도 남다르다.

“창과 60주년을 맞아 커리큘럼의 대대적인 변화를 꾀할 예정이다. 기존 종이매체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상매체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 강화와 드라마쪽을 특화하는 등 시대 변화에 맞춰 교과내용을 탈바꿈할 계획이다. 또 가을에는 창과 60주년 기념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요즘은 교수가 학생들 보양식까지 챙겨주는 시대가 됐지만 방 작가의 대학시절은 어땠을까.

방현석은 80년대 시대와 역사를 고민했던 당대의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그랬듯 노동현장이나 공장에 위장 취업한 이른바 ‘학출(學出·대학생출신)’ 노동운동가였다. 그는 인천지역에서 10년 넘게 공장과 노동조합에서 일했다. 방현석이라는 이름을 단 단편이 발표될 때마다, 당시의 대학가에서는 그의 소설을 복사해 격렬한 문학토론을 하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 ‘새벽출정(1989,창비)’도 1980년대의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여러 가지 형태의 노동운동과 노동자들이 지니고 있던 인간적 삶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잘 보여준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대학시절을 보냈던 노동가로서, 교수로서, 작가로서 그는 요즘 젊은 세대를 ‘안타까운 세대’라고 말했다.

“1980년대는 그래도 희망의 크기, 가능성의 크기가 컸다. 개천에서 용도 나고 신분변화의 여지도 있었고 하지만 지금은 태어날 때 가진 것이 삶을 결정하는 타이트한 사회가 되었다. 젊은이들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긴 줄에 서지 말고 짧은 줄에 서라’고 말해요. 200만 번째 영어 잘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캄보디아어를 200번째로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죠.”

“스스로 감동하지 않는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

민주화운동의 상징 故김근태… 민주주의를 온전히 산 지도자

그는 ‘안타까운 세대’를 위해 지난해 겨울, 9년 만에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를 내놓았다.

1988년 실천문학 봄호에 생동감 있는 노동현장을 그려낸 ‘내딛는 첫발은’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방현석은 ‘내일을 여는 집’, ‘십년간’, ‘당신의 왼편’, ‘아름다운 저항’ 등 우리 현대사에서 노동자의 숨결과 헌신, 민주화 운동 세대의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해 왔다. 그런 그의 시선이 故 김근태를 주목한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는 2011년 12월 30일 고문 후유증과 합병증으로 작고한 김근태(1947~2011)가 주인공이다.

군부 정권에 항거한 김근태는 5년 6개월에 걸친 2차례의 투옥, 26차례의 체포, 7차례의 구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고문 등 그의 삶은 고된 민주화 역정을 대변한다. 김근태의 삶은 바로 우리 현대사의 민주주의가 걸어간 길, 고독했지만 당당했고, 슬프지만 찬란했던 역사 그 자체가 된다.

방 작가는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를 통해 김근태 의장의 어린 시절부터 학자의 꿈을 접고 학생운동에 투신한 대학 시절, 1970년대 전체에 걸친 장기 수배 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그리고 마침내 남영동 대공분실에 붙들려 가 끔찍한 고문을 당한 1985년까지를 시간 순으로 서술한다.

김 의장이 직접 쓴 글과 강연, 부인 인재근 의원과 누이 등 가족·친지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김 의장의 삶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재현하고, 필요한 부분에는 작가적 상상력을 덧입히는 방식을 통해 이 소설이 논픽션과 픽션의 장점을 두루 아우르는 작품이 되도록 했다.

“우리 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 어떤 이들의 피와 눈물과 희생 위에 지금의 민주주의가 세워진 것인지를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보았으면 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솔직히 삼국시대 이야기처럼 아득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의외로 잘 읽었다는 반응이 있었다.”

작가는 실존 인물을 다루다 보니 형식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98%의 사실에 2%의 허구를 섞었다. 소설에서는 잘 쓰지 않는 방법으로 순도 100%의 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무엇보다 그는 집필하면서 “자주 울었다”고 고백했다.

“나 스스로 감동하지 않는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 우리는 정직과 진실을, 민주주의를 목표로 여긴 반면에 김근태는 그것을 이루려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김근태는 정직과 진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이 아니다. 김근태는 그것을 온전히 살아버린 사람이었다. 김근태의 비애는 ‘실패’를 통해서만이 김근태가 옳았음을 입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의 불운이기도 하다.”

방현석 작가는 2013년 봄, 김근태를 정치인이 아닌 정신의 높이 가장 높은 지점에 도달했던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옛날 이야기처럼 1970~80년대의 봄을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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