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조선 왕ㆍ인재천거-박수영 부지사ㆍ청탁배격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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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천거에 대한 조선왕조 기록이 참 많다.

“근래 천거하는 길이 끊어져 현인과 불초한 자가 마구 뒤섞여 있는 실정이다. (관리들은) 인재들을 천거하는 글을 올리라” (의종 22년). “재능과 도덕을 품고 있으면서 은둔해 벼슬에 나가지 않는 이가 있으면…두텁게 대우하여 나오도록 하라”(공민왕 원년). “만일 (천거할 인재가) 가난하여 여행 경비를 조달할 수 없으면 관청에서 의복과 양식을 후히 지급하여 보내도록 하라”(충선왕 원년).

성종의 교시는 더 절박하다. “…그러나 배움의 축적이 없으면 무엇이 선정인지 알 수 없으며 어진 이를 등용하지 않으면 공(功)을 이룰 수 없으므로 안으로는 상서(庠序)를 열고 밖으로는 학교를 설치하여 재능을 견주는 장소를 열고 선비를 취하는 길을 확충하였다. 그런데도 아직 훌륭한 재능을 지닌 출중한 선비를 얻지 못했으니 이는 어진 이를 은폐하고 능력 있는 이를 막는 자가 있기 때문인가?”(성종 11년).

인재천거와 인사청탁 ‘차이’

조선 왕들은 이렇듯 인재를 찾았다. 인재만 얻을 수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좋았다. 인재를 추천하지 못하는 관리는 능력 없는 자로 간주해 꾸짖었다. 능력과 무관한 혈족(血族)의 시대 500년이 유지된 데는 바로 인재 천거제도가 있다. 그랬던 인재 찾기가 이제는 실록에서나 볼 수 있는 고문(古文)이 됐다. 인재천거란 말은 낯설어졌고 대신 인재청탁이란 말이 익숙해졌다. 공직사회의 대표적 ‘악덕’(惡德)으로 꼽히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너나없이 인사청탁과의 전쟁을 얘기한다. 나라를 통치하는 대통령에서 지역을 관리하는 시장 군수까지 다 그런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할 것”이라는 우악스런 표현까지 동원했다. 인사청탁을 했던 대기업 사장을 공개해 투신자살하게 만들기도 했다. 조현오 전경찰청장은 “인사 청탁하는 직원은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천명했다. 실제로 직원의 명단을 공개해 조직에 충격을 줬다.

하지만 이런 인사청탁과의 전쟁이 곧바로 조직의 완성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패가망신’을 경고한 참여정부는 5년 내내 386 측근을 중심으로 도는 회전문 인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렇게 맴돌던 주변인들의 비위가 이어지더니 결국 대통령 스스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조현오 시대의 경찰도 조직 내 하극상이 난무했고 폭로 비방전이 판을 쳤다. 퇴임한 그를 감옥에 보낸 것도 이런 조직 붕괴의 후유증이었다.

이런 게 다 목적이 잘못 정해져서 생긴 일이다. 인사청탁 배격은 인사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인재를 찾아내고 적재적소에 그 인재를 배치해서 조직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마지막 목표다. 공정하고 깨끗한 인사는 그런 목적으로 가는 길에 거쳐 가는 작은 과정이고 당연한 절차일 뿐이다.

이를 박수영 부지사가 모를 리 없다. 정부에서도 인사ㆍ조직ㆍ기획 분야에 정통하다는 평을 받는 그니까. 그런데 그런 그가 “경기도내 인사 청탁이 생각보다 많다. 인사 청탁자에게는 반드시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기자들에게 작정하고 공개한 얘기다. 부임한 지 불과 1주일 만이다. 도대체 그 1주일 동안 행정 1부지사실과 그 방 전화에선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걸까. 혹시 짐보따리를 푸는 일보다 인사청탁 받아 적는 일이 먼저 시작된 건 아닐까.

인재천거의 길 활짝 열어야

인사청탁 피해가는 데야 이골이 났을 그다. 뭉개기, 돌려막기, 넣었다 빼기 등 다양한 기술(?)을 동원하며 슬기롭게 넘어갈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직된 분위기가 정상적인 인재천거의 길까지 막아 버릴 거 같다는 점이다. 묻혀 있는 인재를 찾아 발탁할 수 있는 판단의 정보까지 차단해 버릴 거 같다는 점이다. 그렇게 가면 박 부지사가 꿈꾸는 ‘김문수식 인사 개혁’이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할 텐데…. 걱정이다.

인종은 “시종관은 각자 초야에 숨어 지내는 훌륭한 선비를 1명씩 천거하라”며 강제 할당을 줬다. 그러면서 이런 교시를 함께 내렸다. “천거된 자가 아무 재능이 없을 경우에는 천거한 자에게 벌을 주라”(인종 5년). 천거의 길은 열고, 청탁의 길은 닫아야 하는 박 부지사가 한 번쯤 들여다 봄 직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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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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