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고결한 웅지가 집약된 이 폐사지는 동양최대 최고라는 수식어를 생산한다. 목탑이 석탑으로 진화되어 가던 시기의 시원을 이룬 빼어난 석탑의 진수는 나를 잠시 상상의 범주 밖에서 떠돌게 했다. 무작정 찾아온 국보11호 미륵사지 석탑은 스스로를 지탱하기가 어려웠던 폐허의 허물을 벗고 해체 11년째 복원 중이다. 밑바닥을 흉터처럼 드러낸 흔적만 보고 새로이 복원한 동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너무나 단정한 햇내음이 웅장함을 견지해 내기가 어렵지만 세월은 조금씩 온고지신의 정신을 수용해 갈 것이다. 새로이 탄생될 서탑과 함께. 넓디넓은 절터를 산책하다보면 오래된 향기가 난다. 소멸된 시간의 뒤란 같은. 나는 문득 최승자의 빛나는 시 한 토막을 생각해 냈다. <해마다 유월에는 당신 그늘아래 한번 푸근히 누웠다 가고 싶습니다. 언제나 리허설 없는 개막이었던 당신의 삶은 눈치 챘었겠지요?> 해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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