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김종길_김재홍의 ‘아버지-Ⅰ’

길고 긴 장마가 지나고 열대야가 찾아왔다. 장마도 그렇듯이 열대야도 반갑지 않다. 낮 더위가 밤더위로 이어져서 사람을 뜨겁게 자극한다. 안팎으로 데워진 몸과 마음이 비열(卑劣)로 가득차서 천하고 졸렬한 성깔을 자꾸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장마가, 아니 열대야가 와도 시골은 분주하다. 씨를 뿌렸다고 농사가 다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여름 한 더위의 농사일이야말로 가을 결실을 위한 최고의 노동 덕목이다. 그러므로 뙤약볕 속에서도 아버지 어머니는 대지로 나가 땅을 가꾼다. 아버지의 쉼은 대지의 쉼이요, 아버지의 상처는 대지의 상처다. 아버지 부재의 대지는 풍요를 기약하는 기름진 땅이 아니라 그저 주인 없이 ‘노는 땅’일 따름이다.

김재홍의 ‘아버지-Ⅰ’은 이 땅의 대지가 아버지의, 아니 어머니의 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웅변한다. 가로 182센티미터의 거대한 화면은 일평생 땅을 가꿔 온 땅의 노동자만이 가질 수 있는 주름과 굴곡의 손이다. 손은 오롯이 땅의 형세를 닮았다.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굵게 패인 주름이 산등성이를 이룬 봉우리의 지세라면, 그 마디가 길게 이어져서 산하를 이룬 것이 기세(氣勢)다.

그는 2004년 ‘거인의 잠’을 주제로 작품을 연이어 제작했다. 그는 우리 땅 곳곳에 잠들어 있는 거인의 형상을 발굴해 냈다. 이 산이 머리라면 저 산은 몸뚱이요 팔이요 다리다. 그 형세 지세 기세의 대지를 하나의 풍경에 넣기도 하고, 풍경의 부분을 클로즈업하여 마치 민둥산이 산하를 보여주듯 그려내었던 것이다. ‘거인의 잠-길Ⅲ’이 모로 누운 거인의 옆구리를 아래쪽에서 바라본 형국이라면, ‘거인의 잠Ⅳ’는 모로 누운 거인의 가슴팍이다.

그가 그린 ‘거인의 잠’ 연작에는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몸에 난 상처를 보여준다. ‘거인의 잠-길Ⅲ’에는 차마고도의 길처럼 아스라이 몸에 새겨진 비탈길이 옆구리에서 가슴 젖꼭지까지 이어진다. 대지의 피부를 벗겨내듯 몸에 아로새긴 저 상처의 흔적이 ‘길’이라는 것을 육체는 묵묵히 웅변한다. ‘거인의 잠Ⅳ’은 아예 허리를 가로지르며 둥글게 횡단한 트럭 차량들의 바퀴자국이 선명하다. 거칠게 파 헤쳐져서 마치 살육된 도살장의 고기들처럼 민낯의 비포장을 보여주는 땅의 상흔들.

어쩌면 ‘아버지-Ⅰ’은 그런 몸의 한 부분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손에는 인위적인 상처가 없다. 다만 오래된, 아주 오래된 노동의 흔적들이 쌓여서 대지의 풍경이 되어버린 손이 있다. 땅의 씨알을 움틔워 풍요를 부르는 건강한 아버지가 있을 뿐이다.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기획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