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천국과 복지 망국 사이-
김문수 지사가 2010년 1월 11일 이렇게 말했다. “무상급식은 무조건 배급하자는 북한식 사회주의 논리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도 3월 10일 이렇게 말했다.
“무상급식은 얼치기 좌파가 국민 현혹하기 위해 내세우는 정책이다”. 예의를 생략하고 던진 정치공학적 수사(修辭)다. 하지만 말은 맞았다. 무상복지의 이념적 출발은 사회주의다. ‘경제력의 한계가 복지의 한계’라는 경계를 넘는 순간 그렇게 연결된다. ‘포퓰리즘’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점잖은 거였다.
그랬던 보수가 2012년 대 변신을 꾀한다. 0~5세 무상보육, 고교 무상교육, 반값 등록금, 건강 보험 보장성 확대, 기초 연금 도입, 4대 중증 질환 국가 보장…. 보수 대표라는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다. 진보 측 상대 후보와 차이가 없다. ‘보수=선택적 복지’와 ‘진보=보편적 복지’라는 등식이 깨졌다. 대신 ‘보수=보편적 복지’라는 어색한 공식이 등장했다. 대선판 메뉴에서 보수가 고르려던 선택적 복지는 사라졌다. 보편적 복지와 또 다른 보편적 복지를 놓고 선택해야 했다.
보수의 변절ㆍ진보의 위선
박근혜 정부는 그렇게 보수의 외투에 진보의 내복을 껴입고 시작했다. 그 정부가 내놓은 무상복지의 첫 단추인 세재 개편안이 무너졌다. 보수의 저항이 시작이었다. 우군이라던 중산층이 대노했다. 과거 정권의 경제 수장들도 공세를 높였다. “세금 없이 복지 늘리는 방법은 없다”(한이헌 前수석), “재정 건전 속 복지 확대는 무리다”(권오규 前부총리), “복지 공약을 성역으로 두면 출구는 없다”(윤증현 前장관). 표와 결합한 변절이 받는 혹독한 대가다.
진보의 거짓말은 ‘위선’이었다.
100%에게 차등 없이 나눠주는 보편적 복지. 누가 봐도 사회주의적 이념을 깔고 있다. 평등한 세상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정책이다. 애초 복지가 자유시장 경제 체제에 대한 보완에서 시작됐음을 생각하면 이상할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도 그 정도를 포용할 만큼은 넉넉해졌다. 그런데 정작 진보는 이 문제에 예민했다. 사회주의 얘기만 나오면 펄쩍 뛰었다. ‘애들 식탁에 색깔론을 덧칠하자는 거냐’며 들고 일어나며 이념 논쟁의 길을 막아섰다.
혹 이것 때문은 아닌가 싶다. 선거에 이겨야 하고, 선거에 이기려면 표를 얻어야 하고, 표를 얻으려면 사회주의적 색채와 경계를 그어야 했던 필요성. 문제는 이런 정치 공학적 결벽증이 진보 진영 스스로를 모순에 빠뜨렸다는 거다. ‘공짜로 나눠 주는 몫’만을 설명하게 했고, ‘강제로 거둬야 하는 몫’은 말 못하게 했다. 박근혜 정부의 위기 때 그 한계는 여실히 드러났다. ‘유리지갑 퍼포먼스’는 했지만 ‘재원조달 대안 제시’는 못했다.
보다 못한 진보 인사들이 ‘솔직해지자’며 목소리를 냈다. “진보에서 세금 폭탄론을 꺼낸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다. 1% 부자 감세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이상구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위원장). “박근혜 정부의 세제 개편안은 (오히려)보편복지 시대에 걸맞은 증세 조치 없이 기존 과세 체계를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위원장). 보수의 변절이 보수 내부의 비난을 샀던 것처럼 진보의 위선도 진보 내부의 공격을 받고 있다.
복지 축소냐 증세 인정이냐
이런 변절과 위선도 이제 그 효력을 다 해 간다.
‘19만원’으로 바닥을 드러낸 보편적 복지를 향한 환상은 더 이상 없다. 여(與)의 ‘4% 성장 대망론’이나 야(野)의 ‘1% 부자 증세 해결론’를 믿는 사람도 없다. 남은 건 보편적 복지 앞에 꿇어 앉을 보수와 진보의 석고대죄다.
‘보편적 복지를 포기한다’는 선언을 해야 할 듯 보이고, ‘증세 없는 복지국가는 없다’는 실토를 해야 할 듯 보인다. 변절과 위선의 외줄타기를 끝낼 결단과 용기를 내야 할 듯 보인다. ‘증세(增稅)’의 길목을 지키기 시작한 국민의 기세가 그만큼 서슬 퍼렇다.
*다음 주 ‘③지방선거, 보편적 복지에서 손 떼라’로 이어갑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2. 보수와 진보의 무상복지 거짓말]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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