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번약국제가 있으나 마나다. 당번약국제는 지난 2007년부터 휴일과 심야 시간대 환자의 편의를 위해 각 지역 약사회가 자율적으로 운영토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인천지역 약국 대부분이 당번약국제를 외면하고 있다. 법적으로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당번제에 참여하는 약국들도 시간제한 없이 약사들 편리한대로 약국 문을 열고 닫는다. 규제 없는 자율적 당번약국제는 이래서 애시 당초 실효를 기대하기 어려운 제도였다.
때문에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약국들이 통상적으로 문을 닫는 밤 8시30분 이후엔 의약품 사기가 어렵다. 병의원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인 감기약·외상 치료제·소화제·정장제 등 간단한 치료제를 구하지 못해 문을 연 약국을 찾아 헤매기 일쑤다. 인터넷을 검색해 당번약국을 찾아가도 문이 닫혀 있어 분통만 터트려야 한다. 그러다 하는 수 없이 야간진료비 등 추가 비용이 드는 병원 응급실을 가야하는 불편을 겪는다.
약국은 환자에게 적절한 약을 투약해 건강을 되찾아 주기 위해 존재한다. 이런 본연의 사명을 등한히 한다면 약국과 약사는 존재할 이유도, 가치도 없다. 인천시 약사회 소속 어느 약사는 편의점에서 가정상비약을 판매토록 허용한 이후 당번 날짜에 약국 문을 열어도 손님이 없어 당번제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했다. 약국의 업권 일부를 편의점에 뺏겼다는 하소연으로도 들린다. 하지만 언제 방문할지 모를 단 한명의 환자를 위해서도 당번약국은 문을 열어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약사의 직분을 스스로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다.
또 인천시 약사회는 약국이 자영업이기 때문에 당번제를 강요하기가 곤란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약사의 투약은 사람의 건강과 생명 유지에 직접 관련된 일로 고도의 전문성과 봉사정신을 요한다. 물론 약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충분한 휴식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래서 당번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약국들이 일요일은 약사들의 개인 사정에 따라 휴업하고, 평일에도 당번·비번 할 것 없이 밤 8시30분에 일제히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약국이 아무리 자영업이라 해도 약사라는 전문 의약인으로서의 직분을 망각하고 영업을 할 수는 없다.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다룬다는 직업적 긍지와 사명감을 갖고 봉사하는 윤리의식이 필요하다. 더욱이 국내적으로는 경제수도, 세계적으론 환경수도를 지향하는 인천시로서는 국제도시답게 당번약국제의 모범이 돼야 한다. 당국과 약사회는 당번제를 자율에 맡겨 방관만할 게 아니라 제도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게 규제 방안을 강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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