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예술가가 상업적으로 흥행시키지 못하고, 관객이 없는 영화를 만든다는 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영화상업인 역시 예술가와 관객이 없는 영화를 배급하고, 상영하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지금 이 땅에는 영화상업인들만 있지, 예슬가와 관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영화들이 극장에서 많이 상영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극장에 가면 인기 영화 몇 편만이 거의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극장은 관객을 무시한 것이고, 고로 관객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관객이 뭘까요? 관객은 상업적으로 보면 영화라는 상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입니다.
소비자는 존경받을 만한 존재입니다. 혹시 소비자 기본법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소비자들이 공정한 소비생활을 하기 위해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들을 법적으로 규정하여 놓은 법입니다. 소비자 기본법에 의하면 “소비자라 함은 사업자가 제공하는 물품 또는 용역을 소비생활을 위하여 사용하는 자 또는 생산 활동을 위하여 사용하는 자(제1장 2조)”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사업자란 영화로 적용하면 제작자, 배급업자, 극장주를 말합니다. 물품이란 영화를 말하고, 관객은 소비생활을 위해 혹은 생산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자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소비자는 소비만을 위하여 물건을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생산적인 일에도 그 물건을 사용한다는 말입니다. 영화도 마찬가집니다. 단지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활동을 위하여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소비만 하는 것은 오락을 위한 영화감상이지만, 인생을 깊이 생각하는 문화적 감상에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생산적 수단으로 영화가 차용되는 것이지요.
소비자의 기본적 권리는 “물품 등을 선택함에 있어서 필요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 받을 권리(제2장 4조)”와 “물품 등을 사용함에 있어서 거래 상대방, 구입 장소, 가격 및 거래 조건 등을 자유로이 선택할 권리(제2장 3조)”가 있습니다. 극장의 예매사이트에 들어가서 일주일후 예매하려고 해보십시오. 상영스크린, 일시가 떠있지 않습니다.
길어야 2~3일 전 예매밖에 안 됩니다. 잘 나가는 특정영화만 예매가 가능합니다. 관객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소비자 기본법을 어긴 것입니다. 특정 영화의 예매율은 관객의 선택치곤 일방적인 선택이어서, 다른 영화들과의 형평성으로 보면 불공정합니다. 프랑스의 극장에는 일주일 전 예매가 당연합니다.
왜 한국의 극장에선 일주일 전 예매시스템이 가동하지 않을까요? 주말에 영화가 끝나면 흥행스코어가 나오고, 그 결과에 따라 실적이 나쁜 영화들은 나쁘게 배정하고, 좋은 영화들은 더 좋게 배정해서,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하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주말까지 기다리니까, 개봉 일주일 전에 미리 스크린과 시간을 배정하지 않는 것이지요. 영업권만 생각하지, 소비자의 영화 선택할 권리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입니다. 극단적인 영업권추구가 견제되어야 예술가, 상업인, 관객 삼자가 다 같이 살지 않을까요?
정재형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