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 재판’ 언제까지… 인천시민은 지쳤다 [인천고법 설치 목소리 커진다] (상) 재판하러 매달 서울행 불편
‘법 없이도 산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누구라도 살다 보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서로 잘잘못을 따지다 보면 3심제에 따라 재판을 3번까지 받아야 한다.
사법부의 최고기관인 대법원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12심은 내가 사는 곳에서 이뤄지는 게 당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인천시민은 1심 재판은 인천지방법원에서 하더라도, 본인 또는 상대방이 억울함을 호소해 항소라도 할라치면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항소심)을 해야 한다. 인천에 고등법원이 없다 보니 ‘상경 재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연간 2천여 건의 항소심 사건이 ‘상경(上京) 재판’이다 보니 원고피고는 물론 변호인까지 잦은 서울행에 비용도 많이 들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특히 지역 법조계도 서울 변호사에게 사건 수임을 뺏기는 등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천에 고등법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계 등 지역 안팎에서 거세게 일고 있지만, 사법부는 수년째 묵묵부답(默默不答)이다.
본보는 인천시민의 ‘상경 재판’에 따른 문제점을 점검해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고등법원 원외 재판부 설치 등 3차례에 걸쳐 대책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고등법원없어 항소심은 서울로… 원외재판부도 없어
‘생업 미룬채 왔다갔다’ 시간·경제적 비용 만만찮아
“재판 때문에 매달 서울 가는 게 너무 힘들어요. 나도 힘든데, 증인 해준다고 누가 서울까지 가겠어요?”
인천시 계양구에 사는 A씨(50). 벌써 2년째 부모가 남긴 10억 원짜리 땅 3천여㎡에 대한 소유권을 놓고 형과 법적 소송을 벌이는 A씨는 올해 들어 벌써 10차례나 서울에 다녀와야 했다.
1심에서 승소했지만, 형이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항소심 재판 때문에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고등법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고등법원은 A씨처럼 1심인 인천지방법원 합의부의 판결에 대한 항소 사건을 비롯해 1심의 결정·명령에 대한 항고 사건, 선거 소송 사건 등을 맡는 법원이다.
짧으면 고작 30분에서 길어야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재판이지만, 교통체증이 극심한 서울까지 다녀오다 보면 사실상 하루를 포기해야 한다. 직장인이다 보니 눈치 보이는 것을 A씨가 감수해야 할 몫이다.
A씨는 “나와 형도 인천에서 살고, 인천에서 일한다. 땅도 인천에 있다. 그런데 재판은 서울에서 받아야 한다니, 너무 불합리하다”면서 “잠깐 하는 재판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평일에 회사까지 결근하고, 왕복 3~4시간이나 걸리는 서울까지 가야 하는 불편이 너무 크다. 몸도 마음도 지친다”고 말했다.
A씨처럼 인천시민은 항소심 재판을 받으려면 서울고등법원까지 가는 ‘상경 재판’을 감수해야 한다. 인천에 고등법원은 물론, 원외재판부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울까지 다니는 불편함에 아예 재판을 포기하는 예도 잦다. 이러다 보니 하루 자기 생업을 포기하고 법정에서 증언을 해주겠다는 증인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김기원 인천지방변호사회 회장은 “항소심 재판에 참석하려면 하루를 통째로 버리기 때문에 소송 당사자들이 억울하더라도 그냥 재판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매년 항소심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민우기자 lm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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