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해진 날씨 그래 이맛이야!
사람 입맛이 참 간사하다. 여름 내 냉면이나 막국수 같은 찬 음식을 대 먹다시피 했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국밥집을 찾게 된다. 구미(口味)도 이렇게 염량(炎凉)이 분명한 것인지….
아마 이제 곧 찬바람이 불면 더욱 따끈한 국밥에 소주 생각이 간절해질지 모른다. 국밥은 본래 장국밥을 이르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보면 대략적인 조리법이 나와 있다. ‘국밥에 관한 조리법은 조선 말엽의 ‘규곤요람’에 처음 보인다. 기름진 고기를 장에 조린 뒤 그것을 밥 위에 부어 만든다고 했다.
워낙 탕반류를 호식하는 편인데 마침 사진을 찍는 홍 작가가 부평구 산곡동에 아주 참한 소머리국밥 집이 있다는 귀띔을 해 준 것이다. 얼마 전, 친지를 따라 우연히 들러 맛을 본즉 썩 훌륭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소리에 군침이 돌아 이내 홍 작가와 함께 날짜를 잡고 달려간 것이 바로 엊그제였다.
옥호를 그저 ‘맛좋은집’이라고 붙인 이 국밥집은 서구 가좌동쪽에서 출발해 원적산 관통로를 넘어 오른쪽의 명신여고를 지나치자마자 나타나는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해, 다시 한 200~300m 가량 들어간 길가에 있다.
이 길이 원적산 공원길이다. 부평구 산곡동 179-80번지, 이렇게 주소를 말하면 더 편할지 모르겠다. 거기에 담벼락은 푸른색이고, 문 앞에는 세로로 ‘소머리국밥’이라는 큰 입간판을 붙여 놓았다.
문을 들어서면 바로 옆에 큰 가마솥이 걸려 있다. 여기서 밤새 고기를 고아 낸다. 이어 상을 죽 늘어놓은 대청처럼 생긴 마루방으로 올라서게 되어 있다. 이 마루방을 가로지르면 잇대어 장판방이다.
거기에도 같은 모양의 상들이 놓여 있다. 두 군데를 합치면 40~50명 단체 손님도 거뜬히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는 작은 가게였지만 고만고만한 이웃집들을 몇 채 사서 이어 붙인 것이다. 가게가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천정은 납작하고 실내는 세련되지 못한 대로 국밥을 파는 수더분한 주막 느낌을 준다.
“무얼로 하실까요?”
60대 중반, 인심 좋은 인상의 주인 진순자(秦順子)씨가 웃음 띤 얼굴로 먹을 음식을 묻기 전까지는 당연히 이 집 대표 메뉴인 소머리국밥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만 “내장선지국이요.” 하고 말았다. 먼저 와 앉은 옆 상의 객들이 후후 입으로 김을 불며 먹는 내장선지국이 하도 먹음직스럽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홍 작가가 소머리국밥을 주문했기 때문에 각자의 음식을 반반씩 나누면 두 가지 맛을 다 보게 된다.
내장선지국을 받고는 옆 상에 앉은 사람들처럼 젓가락 가득 콩나물과 선지덩이를 들어 올려 후후 입김을 불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뚝배기가 원체 뜨거워 조금이나마 식히려는 행동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음식을 제대로 먹는 식사법인 양 따라해 본 것이다.
푸짐한 선지덩이와 흠씬 익은 소의 내포 그리고 시원한 콩나물이 씹는 대로 만족스러웠다. 국물도 진해 풍염한 느낌이다. 그득한 선지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잘 삭은 새우젓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아주 독특한 맛을 낸다. 이 젓갈장이 이 집 선지를 특미로 만드는 매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야, 이거!’ 하는 느낌과 밖에서 가늘게 뿌리고 있는 초가을 비까지 자꾸 부추겨 하마터면 낮술의 유혹에 빠질 뻔도 했다. 언제 한가한 저녁 시간에 다시 올 수 있으리라.
간판으로 내건 소머리국밥의 그 담백하면서도 넉넉한 맛 또한 상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끈한, 그리고 맑고 뽀얀 국물 속 흰밥과 소머리고기가 더없이 정갈하고 잡냄새가 전혀 없다. 진순자씨의 소머리국밥 집 경영 31년의 노하우와 정성이 배어 나온 결과다. 듬성듬성 여성끼리도 와 앉는데 깨끗한 맛 때문일 것이다. 과연 이제 소머리국밥이 설렁탕, 해장국과 함께 한국인의 음식으로 널리 보급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다른 식사 메뉴로는 우거지선지국과 묵밥이 있다. 수육과 모두부, 묵무침은 술손님을 위한 안주 종류다. 모두부는 손 두부 한 모를 뜻한다고 한다.
소머리고기가 탐탁지 않은 사람에게는 삼겹살이 추천할 만한 메뉴다. 두툼하고 넓적한 돼지 삼겹살을 상마다 장치한 무쇠솥뚜껑 같은 번철에 올려 굽는데 익어 풍기는 냄새에서 아주 좋은 향취가 난다. 치아 사이에서 탄력 있게 씹히는 맛도 일품이다. 평소 삼겹살에는 구미가 썩 동하지 않는 편인데도 그날은 서너 점이나 입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맛좋은 집! 홍 작가의 추천이 전혀 헛되지 않았다.
글 _ 김윤식 시인 사진 _ 홍승훈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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