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떠러지 앞에서 외로운 싸움… 몸도 마음도 지친 ‘기러기아빠’ 홀로 사는 기혼 남성 30% 우울증에 무방비 노출 극단적 선택 예방책 시급
“아빠는 몸 건강, 정신 건강 모두 다 잃었다. 가족, 형제 등 모든 분께 죄송합니다.”
지난 8일 오후 9시40분께 인천시 계양구 한 빌라에서 기러기 아빠 A씨(53)가 번개탄을 피운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전기기사 일을 하는 A씨는 지난 2009년 아내와 아들 둘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4년 동안 홀로 생활해왔다. 하지만, 점차 일감이 줄어들면서 형편이 어려워졌고, 평소 조용한 성격으로 이웃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특히 최근 아내와 자식을 보려고 미국행을 결심했으나, 개인 사정으로 출국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가족과 수년간 떨어져 홀로 생활해 온 기러기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를 분석한 결과, 인천에서 A씨처럼 기러기 생활을 하는 남성 1인 가구는 1만 2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기러기 아빠의 건강 관련 삶의 질 예측모형 구축’ 논문에는 홀로 생활하는 기혼 남성 29.6%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인천시 연수구의 기러기 아빠 J씨(48)도 아내와 아들을 필리핀으로 유학 보내고 2년째 혼자 생활하다 우울증을 얻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처음에는 가족과 떨어져 외로움이 컸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죽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기러기 아빠들이 외로움에 따른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지만, 대다수가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것으로 분류돼 정부나 사회단체의 보호대상에는 멀어져 있다.
전문가들은 기러기 아빠를 위한 사회적 보호서비스가 절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엄명용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홀로 남은 기러기 아빠들에게 자살 등의 문제가 나타나면서 하나의 사회문제로 볼 수 있게 됐다”며 “건강가정지원센터 서비스나 가족치료 개입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기자 suein84@kyeonggi.com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