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발전ㆍ시민안녕 기원하는 소중한 ‘마을축제’… ‘무형문화제’ 지정 노력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아파트가 모든 계층이 선망하는 모델이자 이상이 되었다. 동시에 우리의 아파트 문화는 70~8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단지별 건설방식으로 인해 인간성 상실, 커뮤니티 단절, 공동체 붕괴 등의 문제를 잉태했다. 그로 인해 현재 우리 사회는 미래지향적 공동체문화의 구축이 절실하다.
공동체문화가 숨 쉬는 지역사회가 도래해야 진정한 선진국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흥문화원(원장 정원철)에서 매년 진행하고 있는 ‘군자봉성황제’은 마을공동체 의식을 단단하게 하는 데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단순한 미신이라 치부하기 보다는 그 역사와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만하다. 과거로의 회귀(回歸)가 아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해주는 탄탄한 ‘공동체 정신’이 담겨 있다.
경기도 시흥지역 주민들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는 ‘군자봉 성황제’가 지난 5일 오전 11시 군자봉 정상 군자성황사지(시흥시 향토유적 제14호)에서 열렸다.
군자봉성황제는 그 역사가 천년 이상된 시흥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민속이다. 군자봉(해발 199m)은 행정구역상 시흥시 군자동과 장현동 능곡동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 이 산에서 성황제를 지냈다는 것은 조선 전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이미 나와 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군자봉성황제는 조선 초기 국가의 공식 기록물에 존재가 언급될 정도로 이 지방에서는 널리 알려졌다. 최소한 500년 이상된 전통있는 성황제이다.
하지만 군자봉에서 모시는 성황신(城隍神)이 김부대왕, 즉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라는 점은 우리나라에 ‘성황신앙’이 전래된 고려시대에 이미 시작됐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의 후삼국 통일 후 경기지역 최대의 호족세력이 된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 일가를 모시를 신앙체계였던 것.
성황신은 한 고을을 수호하는 지역 수호신으로서 우리 조상들은 고려시대 이래 고을의 번영과 주민의 안녕을 성황신께 빌어왔고 그렇게 비는 행사가 바로 성황제다.
군자봉성황제는 군자봉 정상에 성황당을 지어 경순대왕을 모셔놓고 매년 섣달(음력 12월)에 당주와 마을 사람들이 올라가 제를 지낸 후 경순대왕을 마을로 모시고 내려와 집집마다 유가를 돌고 삼월삼짇날(음력 3월 3일)이 되면 다시 군자봉 성황당에 모신 의례다. 그해에 농사의 추수가 끝난 음력 10월 3일에 풍작과 마을 안녕의 편안함을 감사드리고 매년 편안하길 기원하는 마을대동제로 이어졌다.
시흥시의 발전과 시민들의 안녕을 바라는 군자봉성황제는 고려시대 이래 백성들의 소박한 기원풍습을 계승하는 것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시흥시 군자동 구지정에서 태어난 한정현 군자봉성황제보존회장은 “예전부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때부터 들어온 군자봉성황제는 일제시대 그 탄압과 압박 속에서도 불구하고 동네 어르신들의 하나된 마음으로 당주의 노력과 주민들의 단합 속에서 지금까지 어렵게 이어져 내려왔다”고 말했다.
군자봉성황제는 과거 시흥의 전역과 수원ㆍ안산까지 유가를 돌 정도로 큰 규모의 마을굿이었으나 현재는 시흥시 구준물 일대에서만 이뤄지는 무가의례로 축소된 상황이다.
성황제의 의례순서는 당주(堂主) 고현희와 주민들이 봉안한 서낭기를 군자봉정상으로 옮기는 절차부터 시작했다. 부정가리→산불사거리→산신거리→별상거리→신장거리→대감거리→창부거리→뒷전거리의 순서로 굿이 진행됐다.
이러한 형식을 놓고 성황제 자체를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허나 이날 군자봉 정상에 오른 시민들의 마음은 매한가지. 자식 건강과 가족의 평화,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흥의 지역발전이었다. 주민들은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소박한 기원과 지역화합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종의 ‘축제’라는 관점에서 성황제를 즐기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에서 군자봉상황제의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1993년 제8회 경기도민속예술제경연대회에 출전해 ‘발굴상’을 받는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시흥시민속예술로서 지정받기 위한 발판을 다져나가고 있다. 또 2004년 10월 군자봉성황제 학술회의를 개최했고 그러한 사전연구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2005년 1월 ‘군자봉성황제’ 단행본을 민속원에서 발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군자봉성황제는 시흥시민들이 소중한 문화적 자산으로 앞으로도 향토전통예술의 가치를 인정받고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는 곧 미래지향적 공동체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정원철 시흥문화원장은 “앞으로도 군자봉성황제가 이웃과 화합하고 넉넉한 인정을 나누며 나의 건강, 이웃의 기쁨, 시흥의 번영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자리로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백성들의 소박한 기원풍습이 담겨 있는 군자봉성황제가 하루 빨리 무형문화재를 지정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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