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국가주도적 기부문화 지원ㆍ英 전방위적 기부시스템 ‘롤모델’ 삼아야
재원 조성과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 개선 등을 이유로 기부 문화 정착에 고군분투하는 국내 문화예술기관. 이들이 지향하는 모델은 크게 유럽과 미국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유럽모델은 루브르박물관과 테이트모던 등 세계적 문화예술기관을 운영하는 프랑스와 영국이 대표적이다.
양국 모두 수 십년전부터 정부 지원금과 함께 기부금을 중요한 재정 기반 및 운영 예산의 한 축으로 세웠다. 정부와 지자체의 공적 자금 지원이 메마르면서 적극적인 재원확보를 요구받고 있는 국내 문화예술기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흥미로운 광고가 떴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340만달러 상당의 작품 구매를 위해 시민 후원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세계적 경제위기가 연일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발디딜틈 없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까지 덮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당시 광고 한달여만에 수 천명이 참여해 약 7억원을 모금했다는 것이다. 박물관이 소장품 구매를 위해 모금 광고를 내고 이를 본 시민이 십시일반 자발적으로 기부해 수 억원을 쌓는 것은 국내에서 쉽게 그릴 수 없는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문화 강국 프랑스 역시 이 같은 환상이 현실이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유럽에서 문화 부문에 가장 많은 예산을 책정하는 프랑스는 국립문화기관에 국가 보조금을 지원한다.
각종 국내 보고서와 연구 자료 등에 따르면 루브르박물관은 2003년부터 최근까지의 평균 전체 예산 3천150억원 중 기부금ㆍ후원ㆍ민간보조금 등은 15% 가량인 450억원이다.
관장을 비롯한 임원이 적극적으로 모금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별도의 담당부서가 있으며 25명이나 상근하고 있다. 이 부서는 입장료 할인, VIP 모임 추진, 기업 이미지 제고 위한 협력 등 후원자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혜택을 기획해 제공한다. 그 결과 매년 소액ㆍ거액 기부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기부자 모임도 다양해지고 있다.
프랑스의 또 다른 대표 문화예술기관인 퐁피두센터 역시 점차 전체 운영 예산의 기부금 비중을 높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파리에 있는 국립 조르주 퐁피두 예술 문화센터(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Pompidou)는 도서관, 국립근대미술관, 음악연구소 등 다양한 문화예술 기능이 집결된 건물이다. 배수관과 가스관, 통풍구 등을 노출시킨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더 유명하다.
특히 기업으로부터 전시경비의 일부를 지원받는데, 2004년 80만 유로에서 2006년 160만 유로로 2배 가량 많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해마나 기업 기부금은 늘고 있는 상황인데, 퐁피두센터발전협회가 한 몫 한다. 이 협회는 기업을 대상으로 기부금을 유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대표는 퐁피두센터의 이사가 맡고, 3명의 상근 직원과 많은 자원봉사자가 함께 한다.
이처럼 프랑스의 대표적인 두 개의 국립 문화예술기관인 루브르박물관과 퐁피두센터는 소장품이나 기능면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전문 부서를 둬 매년 전체 예산의 기부금 비중을 적극 높여간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기관 내부에 전문 조직을 두고 유연한 회계 관리 체계를 마련해 후원이나 협찬처럼 다양한 형태의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2003년 민간지원을 촉진시키기 위한 프랑스 정부의 문화정책이 유효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2003~2004년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장쟈크 아야공은 다양한 문화예술 지원제도를 제시했다. 2003년 8월에 제정한 ‘메세나와 협회 및 재단에 관한 법률’도 그 중 하나다. 후원자와 후원 재단에 대해 세금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예를 들어 기업이나 개인이 박물관에 후원한 금액의 60%를 세금, 정부가 문화유산을 살 때 기업이 후원하는 액수의 90%를 법인세에서 각각 감해준다. 개인 후원자에게도 후원금의 66%에 대해 면세 혜택을 준다.
이처럼 프랑스가 국립문화예술기관에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국가 보조금을 지원하며, 각 기관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모금 활동까지 국가주도적 문화정책으로 적극 ‘지원사격’하는 것은 주목할 지점이다.
지난 2000년 화력발전소에서 세계적 현대미술관으로 변신한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Tate Modern).
건축물이 갖는 역사성과 현대 미술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테이트모던이 또 한 번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오는 2016년까지 진행 중인 전시 공간 확장 사업 예산으로 약 174억원의 기부금을 확보한 것이다. 선박업계 억만장자인 에얄 오퍼가 기부한 것으로, 이 금액은 해당 사업 예산의 85%에 달한다. 미술관 측은 그 답례로 기부자의 이름을 딴 전시공간을 구성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영국의 문화예술기관이 199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모금 사업에 뛰어든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1980년대 영국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 기업, 비영리단체 등 모든 주체가 공동으로 노력해야한다는 ‘거버넌스(governance) 이론’을 중심으로 주요 문화예술 인프라의 민간재단화를 추진하는 등 문화예술 부문에 대한 기부 문화 정착에 적극 나섰다. 지금까지도 영국은 역사적으로 기부 문화가 가장 잘 발달한 나라로 꼽힌다.
영국은 기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주도의 ‘빅 소사이이어티(Big Society)’를 구성하고 방송사의 주기적인 기부 이벤트와 같은 대규모 캠페인을 벌였다. 또 개인 기부자에게는 한도 없이 기부금액의 22% 또는 40%의 소득공제를 실시했고, 기업이나 법인 단체에 대해에서는 과세 수입에서 기부금액을 차감했다.
이 때부터 영국의 문화예술기관도 적극적으로 모금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대영박물관, 테이트모던, 로열오페라 등 영국의 대표 문화예술기관은 과감하게 거액 모금 캠페인을 벌였다. 이는 유럽 전역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 문화가 확산ㆍ정착되는 기폭제가 됐다.
이 중 박물관 성공사례로도 항상 거론되는 테이트모던은 모금 사업을 전담하는 펀드레이징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이 부서가 전시 공간 곳곳에 관람객의 기부를 유도하는 독특하고 친근한 형태의 도네이션함(기부상자)을 설치하는 것은 모금 사업의 기본이다.
이는 영국 대부분의 문화예술기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영국의 대영박물관도 그렇다. 특별전 외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 대신, 공간 곳곳에 규모 상관없이 넣을 수 있는 기부상자가 있다.
이처럼 영국의 각종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은 개인이 무료로 입장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기부금을 포함한 입장료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전 국민과 외국인이 소액 기부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기업과 단체 등을 대상으로 한 정기적 혹은 거액 모금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테이트모던은 또 멤버십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데 1년 연회비를 내는 방식으로 1명은 50파운드, 2명은 74파운드, 3명은 104파운드를 내도록 한다. 회원게는 전시회 무료 관람과 매거진 발송, 런던 유명 전시 초대 등의 혜택을 준다.
1982년에는 테이트 후원 조직 ‘Tate Patrons’를 조직해 전시와 각종 교육 프로그램 등의 주요 후원자가 되도록 이끈다. 실버, 골드, 플래티늄 등 3개 등급으로 구분해 각기 다른 혜택을 준다.
이 박에 연간 기금 캠페인을 벌여 ‘Tate Fund’를 조성해 예술 작품 구입 및 소장품 보존에 사용한다.
대영박물관도 세계 각국의 기부자로 구성된 후원회 ‘대영박물관 친구들’로부터 소장품 구입과 연구사업 등을 지속적으로 후원받고 있다.
개인과 기업, 소액과 거액 등 전방위적으로 정착된 영국의 기부 문화와 그 시스템은 이제 막 모금 사업에 뛰어든 국내 문화예술기관에 요구되는 폭넓은 모금사업의 롤모델이 될 만 하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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