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故土) 회복 운동을 위한 작은 제안-
경기도청은 원래 서울에 있었다. 지금부터 52년전 신문에는 이렇게 등장한다.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고대(高大) 데모 대를 습격한 정치깡패 임(林和秀) 등 일당 16명에 대한 특재 제三회 공판이 사건 발생 바로 한 돐되는 十八일 하오 대법정에서 개정되었다. …총 지휘자로 알려진 유(柳志光)는 작년 四월 十八일 하오 반공청년단 본부의 지령을 받고 부하들을 <경기도청> 앞으로 집합시킨바 있으나 천일 백화점 앞에서 난투를 지휘한 사실은 없다고 하였다.’-경향신문 1961년 4월 19일. 기사 ‘政治 깡패의 末路’ 중에서- 경기도청>
그로부터 28년뒤. 그 건물이 헐린다는 계획이 알려졌다. 이런 사설이 실린다.
‘옛 <경기도청> 청사 건물이 헐릴 것이라는 보도가 있다…이 건물은 1909년 우리 구한국 정부가 내부 청사로 쓰기 위해 기공하여 1910년 8월 한일 합방이 강행되던 해에 완공했다. 연건평 472평의 이 건물은 당시 5만8천700원의 큰 돈을 들여…합방이후 일제가 인근의 경복궁을 헐고 그 자리에 총독부 청사를 거창하게 지었으며 이 건물은 <경기도 청사> 로 사용했다.’-동아일보 1989년 10월 12일. 사설 ‘철거 문제 신중히 해야’ 중에서- 경기도> 경기도청>
위대한 경기도 ‘증거’
그로부터 또 24년 뒤인 2013년 11월18일. 어느 공직자의 페이스북에 그 터가 등장한다.
‘역사박물관 옥상에서 본 경기도청 옛자리입니다. 경기도민은 1,250만명으로 우리 국민 4명 중 1명이 경기도에 사십니다.’ 함께 올린 사진도 있다. 멀리 북악산과 경복궁 정문이 보인다.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둘러싸인 전경이 아름답다. 수백명이 ‘좋아요’를 찍었고, 수십명이 ‘댓글’을 달았다. 과장, 국장, 실장, 부지사를 모두 경기도에서 역임한 공무원이 올린 글이다.-안전행정부 이재율 안전본부장 페이스 북. ‘여기가 경기도청 옛자리입니다’-
맞다. 우리가 한참을 잊고 있었다. 경기도청의 고향은 서울이었다. 임금이 살던 경복궁 앞이었다. 거긴 백성이 살아가는 중심이었다. 대한제국이 움직이는 복판이었다. 일제 한(恨)이 숨죽이던 공간이었다. 해방 공간이 꿈틀대던 현장이었다. 근대화 청사진이 시작되던 진원지였다. 이렇게 경기도청 옛 터는 백성의 중심, 구한국의 복판, 일제 한의 공간, 해방공간의 현장, 근대화의 진원지였다. 그 위대한 역사의 중심이 광화문 경기도청이었다.
‘정체성 없는 경기도’-이 치욕의 역사도 따지고 보면 그곳을 내어주면서 시작됐다. 1967년 6월23일 도청사가 수원으로 왔다. 같은 해 7월 1일 의정부에 북부 출장소가 설치됐다. 중심을 잃은 경기도에 서로 다른 남북 문화가 시작됐다. 그리고 14년 뒤인 1981년 7월1일, 인천시까지 나갔다. 남아 있던 동서의 동질감마저 축을 잃었다. 이후 경기도는 정체성 없는 동네가 됐다. 31개 시군이 서로 다른 정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모태(母胎) 상실이 빚은 결과다.
흔히들 민선(民選)의 역사를 역사 짜깁기의 역사라고 비꼰다. 너도나도 역사 만들기에 혈안이다. 소설 임꺽정의 배경이었다며 대두령(大頭領)을 뽑는다. 괴산군의 임꺽정 축제다. 소설 속 심청이의 고향이라며 공양미를 모은다. 곡성군의 심청이 축제다. 그래서 팔릴 고추가 얼마나 되고, 몰려올 섬진강 관광객이 몇이나 되겠나. 그래도 이런 행사는 십수년째 이어진다. 지역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만들어 보려는 안달이다.
거기 비하면 ‘옛 경기도청 터’는 더 없이 확정적인 역사다. 경기도민의 정신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성지(聖地)다.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중심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사적(史蹟)이다. 그런데 이런 성지와 사적을 우리가 버려두고 있었다. 차디찬 대리석과 연고 없는 잡목들로 채워놓고 있었다. 경기도의 역사 대신 ‘서울 시민의 공원’으로 내어주고 있었다. 뼛속까지 경기도 공무원인 ‘이 본부장’의 페이스북에도 그런 아쉬움이 줄줄 흐른다.
사들여 ‘명소’ 만들자
그래서 하는 제안인데, 이러면 어떨까. -‘다믄 열 평이라도 경기도가 산다. 경기도를 알리는 번듯한 상징물을 세운다. 도민들의 서울 나들이를 위한 명소(名所)로 가꾼다. 청와대에 해야 할 얘기라면 그곳에서 소리친다. 큰일 하고 싶은 도민에겐 출정식 장소로도 제격이다.’-
다른 도(道)는 흉내 낼 수 없는 일이다. 서울 광화문에 흔적을 갖고 있는 경기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한번 해봄 직 하지 않나. ‘경기도 고토(故土) 회복 운동’! 언젠가 시작될지 모를 이 서명운동의 한 귀퉁이를 미리 예약해둘까 한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서울 한가운데 경기도청 옛 터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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