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밥상이 그리울때 찾는 곳…
3대에 걸쳐 30년 넘게 ‘밥집의 역사’
인천 연수구청 건너편 맛집 골목 내 연화여중 후문 앞, 올해 마흔아홉 살의 주인 이광호(李光鎬)씨가 경영하는 ‘전동밥상’ 일명 ‘전동집’.
언뜻 ‘전통(傳統)집’으로 들리기 쉬운데, 그렇게 전통으로 들어도 좋을 것이 실제도 과거에 흔했던 상밥집 비슷하게 백반(현재는 잡곡 돌솥밥이다.) 상을 내놓기 때문이다. 이 집의 특색은 옛 상밥집 타입을 조금 비껴 앞으로 나아갔다고 할까, 아니면 거꾸로 규모 큰 한정식 집 메뉴를 좀 줄여 놓았다고 할까.
상호에 전동이 쓰인 것은 주인 이광호 사장네 과거 거주지가 중구 ‘전동(錢洞)’이었던 데서 기인한다. 이 사장 모친이 거주지 전동을 상호로 써서 역시 같은 중구 송학동, 옛날 인천시장 관사 밑에서 한정식 집, ‘전동집’을 연 것이 시초였다. 이 사장 모친은 1997년 가게를 이곳 연수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운영했고, 이곳으로 이전해 와서는 이 사장이 상호 그대로 대를 이은 것이다.
막 익으려는 열무김치가 입 안에서 산뜻하게 씹히고 뽕잎장아찌와 곰취장아찌의 향미는 깊고 그윽하다. 한국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잡채 접시의 기름지고 풍성한 맛과 양은 그야말로 구복(口腹)에 복을 가한다.
육류로는 유일하게 돼지제육볶음이 나오는데 상추쌈은 이것을 싸 먹어도 좋다는 뜻일 것이다. 이어서 뚝배기에 담긴 푸짐한 계란찜과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상 위로 올라온다. 이 된장찌개 대신 비지찌개가 나오는 날도 있다.
뜸이 잘 든, 돌솥 속의 차조가 섞인 잡곡밥을 퍼 그릇에 옮기고 물을 부어 다시 뚜껑을 덮어 놓고는 이내 조기조림 간장을 떠서 밥그릇 한쪽을 비빈다. 입안 가득히 퍼지는 짭조름한 맛과 함께 잔잔하게 풍기는 조기 비린내, 그리고 거기 순박하게 어우러진 양념 맛이라니!
요즘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나, 좀 과장해서 말하면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런 맛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다만 이렇게 간장에 밥을 비비려면 그 밥이 말 그대로 백 퍼센트 흰밥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제 맛이 난다. 이것은 한국인이 가진 혀의 예민함이지 결코 잘못된 습관은 아닐 것이다.
간장으로만 다 비벼 먹을 수는 없어 된장찌개도 떠 보고, 맨밥 숟가락 위에 뽕잎장아찌를 얹어 입에 넣어 보기도 한다. 이내 밥그릇이 빈다. 돌솥을 당겨 뚜껑을 열고 잘 불은 누름밥을 뜬다. 누름밥은 당귀장아찌나 시래기무침과 먹는 것이 요령. 그래야 입안이 상쾌하고 개운하다. 아쉬운 것은 양념을 잘한 젓갈류가 한 가지쯤 있었더라면 하는 점이다. 누름밥은 새우젓이나 조개젓과도 썩 조화로운데….
이렇게 모든 찬을 하나하나 상미(嘗味)해 보면서도 솔직히 상추에만은 손을 대지 않았다. 물수건 하나로는 손의 위생에 자신 없었던 데다가 점심에 퍼질러 앉아 쌈을 싸 꾸역꾸역 입에 넣기가 좀 그랬기 때문이다.
전동집에는 방금 먹은 이 집의 대표 음식 격인 백반 메뉴 외에도 모친 시절부터 평이 나 있는 별도 갈치조림이나 병어조림이 있고, 후에 이 사장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퓨전 요리로 ‘묵은지닭볶음탕’, ‘주물럭쌈’ 같은 것이 있다.
술과 식사겸한 저녁용 다섯가지 요리 인기
여기에 한 가지 더 첨가할 것은 단체 손님을 위해 이 사장이 개발한 메뉴다. 술과 식사를 겸한 저녁용 다섯 가지 코스 요리로 탕 종류, 조림류, 튀김류, 그리고 일식이라고 할 생선회, 중국요리로는 고추잡채와 유산슬이 포함된, 남녀노소 각각 다른 입맛과 기호에 맞도록 한 ‘통섭의 요리’다.
단체 회식이라면 정해진 듯 고기집이나 회집, 중국집으로 향하는 것에 착안해 이를 조합한 메뉴를 개발한 것이다. “전통 음식을 보존하면서, 한 편 새로운 요리도 창안해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 개발, 도전이 이 기계공학과 출신 음식점 사장 이광호씨의, 삶의 의미 전부라는 듯이.
아무튼 오늘 맛본 이 호사스런 백반의 정가는 8천 원이다. 비슷한 메뉴를 내는 식당이 인천 땅에 적지 않겠으나, 전동집의 음식이 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옛 맛의 명맥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고마워서 더 흡족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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