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지휘자란 무엇인가?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가면 청중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사람이 지휘자이다. 실제로 소리를 내지 않는데도 그의 열정적인 몸동작과 다양한 얼굴 표정이 음악 소리와 어우러져 깊은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지휘자는 성공하게 되면 큰 존경과 경제·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으며, 다른 직업과는 달리 고령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경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의문도 따른다.

연주자들은 모두 정규음악 교육을 받은 프로 음악가들이며 악보를 잘 읽을 수 있는데 왜 지휘자의 동작을 보고 따라 연주해야 하는가? 지휘자는 모든 악기들을 다 연주할 수 있는가? 지휘자에 대한 관심 만큼이나 그 직업에 대한 의문이 늘 따라다닌다.

지휘자란 도대체 오케스트라에서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사람이 지휘자가 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해보려 한다.

첫째, 지휘자가 하는 일은 손과 팔을 이용해 오케스트라에 신호를 주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지휘자가 하는 일의 더 중요한 부분은 듣는 일이다. 지휘자는 연주자들이 악보를 읽어 연주하는 음악을 명민하게 듣고 예술적인 판단을 해줘야 한다.

반드시 틀린 음이나 잘못된 리듬을 지적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연주자들이 최선을 다해 가장 훌륭한 앙상블을 만들 수 있도록 예술적 귀로 듣고 예술적 판단을 해야 한다.

둘째,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지휘자는 사실 드물다. 유명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독일 출신의 파울힌데미트는 오케스트라의 악기 대부분을 연주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그런 지휘자는 극히 드물다.

지휘자는 대개 한두개 정도 악기의 숙련된 연주자이며, 피아니스트 출신들이 상당히 많다. 정명훈씨도 지휘자 이전에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분이다. 세계적인 지휘자 중 번스타인, 무티, 카라얀, 바렌보임 등은 상당한 피아노 실력을 갖춘 지휘자들이다.

로린 마젤은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이며 존 바비리올리 경은 첼리스트, 콜린 데이비스경은 클라리넷 주자 출신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지휘자 본인의 악기 실력이 반드시 지휘자로서의 능력과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축구감독과도 비슷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축구명장 히딩크 감독도 선수 시절에는 그리 신통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명한 지휘자들도 그런 경우가 상당히 있다. 세계적인 지휘자 로저 노링턴은 성악가와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한 적이 있지만 그리 성공적인 연주자 경력을 갖고 있지 않다.

셋째,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지휘자가 되는가? 지휘자들은 대개 성인이 된 이후, 또는 음악가로서 어느 정도 경력을 갖춘 이후 어떤 시점에 지휘자가 되겠노라고 결심하게 된다.

독일어권이나 이탈리아에서는 최근까지 주로 오페라 극장의 피아노 반주자로 근무하는 것이 지휘자의 시작이었다. 지휘자란 오페라를 지휘하는 사람이었으며, 유명한 지휘자 밑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지휘 기술을 보고 익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스템이었던 셈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에서는 최근까지 대개 오케스트라의 연주자 출신들이 지휘봉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활동하는 지휘자들도 대부분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 등지의 음악학교에서 지휘과를 졸업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휘과를 나오지 않고서도 지휘자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의료인이나 법조인이 되는 것처럼 전문 대학원이나 국가고시 같은 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가 보시라. 지휘자의 동작과 표정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으며 그것이 어떠한 소리의 결과물로 청중에게 다가오는가? 이런 것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도 음악회의 재미 중 하나다. 연말연시에는 공연도 많으니 이런 저런 술자리에서 겨울밤들을 부질없이 날려버리기보다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음악공연장을 찾아보는 것이 괜찮은 생각일 것이다.

양승렬 수원오페라단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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